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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 유류세 내려야 하나

"국민 부담 너무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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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지속하면서 국내 기름값이 덩달아 치솟자 자동차 연료에 붙는 유류세를 깎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위축된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뜩이나 세수가 구멍난 판에 세수를 더 줄일 수 없다는 이유로 유류세 인하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 정부의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사회=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57달러를 넘어섰다.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관련 세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서민 부담 경감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과, 세금이 낮아지면 석유 소비를 부추기고 세수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는 반론이 맞서 있다.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안경률 의원=국내 휘발유와 경유의 세금 비중은 각각 60.5%와 48.2%에 이른다. 석유값에서 차지하는 세금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아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세 체계를 바꿔서라도 대폭 인하해야 한다. 5년 안에 50% 정도 내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간 10% 정도씩 단계적으로 낮춰야 한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국민은 민간부문에서 소비절약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유사들도 원가절감과 정제시설 효율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도 유류세를 낮춰 국민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 유류세 인하 문제를 놓고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권오성 위원, 권혁세 국장, 강치원 교수(사회), 안경률 의원, 홍창의 교수. 양영석 인턴기자

▶권혁세 국장=국내 석유류 가격은 OECD 가입국 중 16위다. 비산유국 중에서는 14위다.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또 국제유가가 올 들어 42% 올랐지만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8%와 23% 오르는 데 그쳤다. 주로 환율이 많이 떨어진 때문이지만 세금 비중이 높았던 이유도 있다. 국제유가 변동의 영향을 받는 부분의 비중이 작다 보니 소비자가격이 적게 오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세금 비중이 높아 국제유가 상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소비 절약을 유도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권오성 연구위원=유류세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유가 등락에 따라 조세 정책을 바꾸면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잃고 경제운영에 혼선을 가져온다. 석유류 가격도 환경오염과 교통 영향을 감안하면 높다고 할 수 없다. 휘발유의 경우 현재 ℓ당 1500원 안팎에 팔리고 있지만 전문 연구기관은 1600원을 적정 가격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공장도 가격 470원에 환경오염비용 410원, 교통혼잡비용 519원, 부가세 142원 등을 더한 것이다. 유류세 인하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시대 상황과도 맞지 맞는다.

▶안경률=국내 석유값이 비싸지 않다는 주장은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국내 휘발유에 붙는 각종 세금은 ℓ당 871원으로 영국의 1100원보다 적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소득이 1만2000달러인데 비해 영국은 2만6000달러다. 미국의 경우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유류세 부담이 국내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또 유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고, 내리면 늘어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2000~2004년 휘발유 가격이 10%, 경유값이 56% 올랐는데 휘발유 사용은 6.7% 줄고 경유 사용은 11% 늘었다.

▶홍창의 교수=세금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도 문제다. 부가세에 교육세.특소세.주행세까지 덕지덕지 세금이 붙어 있다. 이 중 주행세와 특소세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휘발유를 사치품이라 보기 힘든 데도 특소세 성격의 교통세를 매기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벽걸이TV와 골프용품 등 서민이 쓰지 않는 물건의 특소세를 대폭 깎아준 것과 비교된다.

▶권혁세=휘발유에 환경오염과 도로 손상을 감안해 부가세와 별도로 교통세를 과세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명칭이 오해를 살 수 있다면 바꿀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 목적세 정비는 필요하다. 소득 수준을 감안한 유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OECD 가입국 중 5위 정도다. 하지만 산유국이고 자가용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미국과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유럽 쪽과 비교하면 소득 수준을 감안해도 아주 높다고 할 수 없다. 석유 관련 세금을 깎아주면 그만큼 다른 분야 소비가 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휘발유 관련 세금을 10% 내리면 세수가 7000억원 줄어들고 정부가 그만큼 투자를 못하게 된다. 반면 휘발유 소비를 10% 줄이면 다른 소비가 1조2000억원 늘어난다. 세금을 줄이는 것보다는 유류 소비를 줄이는 게 훨씬 경제에 도움이 된다.

▶권오성=국내 에너지 관련 세제가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목적세로 걷다 보니 칸막이 식으로 경직되게 운영된다.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세제를 단순화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모두 일반소비세로 전환해 환경세적 기능을 강화하는 게 좋다. 현재는 이 세금들을 환경개선 사업 등에 전혀 쓸 수 없다. 재정지출의 운용 순위에 따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홍창의=현재의 세금 체계는 강원도 산골을 운행하는 운전자가 왜 서울의 교통혼잡 세금을 물어야 하느냐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환경 문제도 세금을 통한 가격 정책보다는 차량성능이나 유류 품질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세 중 유류세 비중이 16.5%, 지방세를 포함하면 18.2%로 너무 높고 간접세 비중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안경률=일본은 국세 중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8.3%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국가 재정을 통한 투자엔 전혀 문제가 없다. 유류세를 높여야 투자가 활성화하고 소비가 진작된다는 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이다. 무조건 조세구조 변경은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조세 체계를 바꿔야 한다.

▶권오성=국세 중 유류세의 적정 비율은 국가별, 경제 상황별로 다르다. 세금 인하는 미봉책이지 근본대책은 될 수 없다. 이미 농업 면세유를 공급하고 대중교통과 화물차에 대한 세금인상분 환급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로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게 맞다. 한국은 세계에서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가장 높고 소비는 비효율적인 나라 중 하나다.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권혁세=일본이 한국보다 유류세 부담이 낮고 직접세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적 추세는 직접세 비중을 낮추고 간접세 비중을 올리는 것이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되도록 줄여 투자를 유치하고 근로의욕을 북돋우기 위해서다. 또 고유가가 일시적이라면 가격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게 효과가 있겠지만 지금은 장기화 가능성이 크다. 세금을 깎아 석유를 많이 쓰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홍창의=국제유가가 계속 올라가고 국민 부담이 커질 것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원유 가격이 높다지만 배럴(약 160ℓ)당 60달러 수준으로 생수 가격보다 싸다. 가격이 더 뛸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세금 부담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석유 관련 세금이 에너지 정책보다는 세수 확보 차원에서만 다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 2000년 휘발유.경유.LPG의 가격 비율은 100대 47대 26이었다. 정부는 이 비율을 100대 75대 60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가 경유를 쓰는 승합차가 많아지자 다시 100대 85대 50으로 경유의 세금 비중을 높였다.

▶권오성=에너지 세제는 세수보다는 유종별 수요 변화와 에너지 수급구조, 환경, OECD와의 상대가격 등을 종합 고려해 개편한 것이다. 경유에 붙는 세금 비중을 올린 것은 연비가 높고 올부터 경유 승용차 시판이 허용돼 경유 차량이 급속히 증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회=정부는 지난해 국제유가가 35달러까지 오르면 유류세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는데.

▶권혁세=지난해 4월만 해도 유가 급등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 유가 급등이 6개월 이상은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유가를 안정시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고유가 추세가 굳어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세금을 깎는 미봉책으로 해결이 어려워졌다. 10부제나 네온사인 규제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세금 깎아 소비를 장려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게 근본대책이고, 그러자면 가격원리가 작동되어야 한다.

▶안경률=세계에서 우리만큼 많은 유류세를 부담하며 고통을 참아가는 나라가 없다.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를 설득하기 어렵다. 국민에게는 소비를 줄이고 고통을 참으라고 하지만 정유사는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 정유사는 지난해 실제 인상요인보다 최저 22%, 많게는 47%까지 석유값을 더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정유사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현대정유 88.6%, 인천정유 33%, GS칼텍스 12%, SK 24%에 달했다. 국민은 고통 받는데 정유사는 이익이 급증하는 구조는 뭔가 잘못됐다. 정유사도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권혁세=유가가 오르면 정유사 이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유를 사서 가공하는 동안 값이 오르면 정유사 이익이 많아진다. 반대로 유가 하락기엔 정유사가 상대적으로 손실을 보게 된다.

▶안경률=그래도 이익이 70~80% 늘어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공정위에서 정유사들의 가격담합을 조사하고 있다지만 1년반이 지나도록 결과가 안 나온다.

▶홍창의=유가 상승기에 정유사 이익이 늘 수밖에 없다지만 시민 입장에선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민 부담이 가중되는 부분은 정부가 가격 조절이나 시장구조 개선으로 줄여야 한다. 유류시장 자체가 공급자 위주의 시장인 점도 문제다.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구조는 지속될 것이다. 국내 주유소는 대부분 한 정유사의 제품만 팔고 있다. 여러 회사 제품을 파는 통합형 주유소는 거의 없다.

▶권혁세=유가 상승으로 정유사가 이익을 얻는다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누가 보장해주나. 기업이 리스크 지고 장사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 공급자 시장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한 주유소가 한 정유사의 제품만 판다 하더라도 소비자가 그중 싼 곳을 찾아가므로 소비자 시장이다.

▶안경률=지나치게 폭리를 취하는 데 대해 공정위든 재경부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화 측면에서도 정유사가 개선할 점이 있다. 고도화 시설 등에 투자를 안한다. 국내 원유 정제시설의 고도화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미국은 69%, 일본은 40%다. 국민이 외국보다 더 비싸게 기름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정유사가 이익을 많이 남긴다 해도 해외 석유시추나 대체에너지 개발 등 장기적 에너지 확보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홍창의=석유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분리해야 한다. 주유소를 대형화하고 여러 회사의 제품을 취급할 수 있게 하면 정유사 입김이 줄어든다. 유럽의 경우 주유소가 대형 할인점 위주로 개편되고 있다. 할인점 내에 대형 주차장과 주유소를 갖추고 고유 브랜드로 석유를 파는데 값이 훨씬 싸다. 품질과 브랜드에 민감한 고급차 소유자 등은 정유사 직영 주유소를 찾지만 일반 수요자는 할인점 주유소를 이용한다. 불량 유류 유통 가능성은 평소 철저히 감독하고 판매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사회=결국 장기적으론 에너지 절약을 위한 산업구조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권오성=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고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태양열.풍력 등 환경친화적인 재생 에너지 개발에 힘써야 한다.

▶홍창의=대도시 교통혼잡을 완화할 교통 체계 개선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백화점이 주차요금을 면제할 수 없게 하는 등의 규제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도 필요하다. 외국에선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하루나 한 주, 월 단위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엔 없다. 소형차나 경차 전용 주차공간 확보 등 승용차 대형화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고 대도시에서 지능형 교통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권혁세=난방 등 일상생활에서 국민 스스로 에너지 절약을 습관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분야가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고,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했던 정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환경과 에너지 절약에 보다 많이 투자해야 한다. 국가적으론 대체에너지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중시하고 정유사 등의 해외 자원개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안경률=정부와 지도 계층이 솔선수범하는 게 시급하다. 정유회사들은 고도화 시설에 투자하고 해외 석유개발, 대체에너지 개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정부 당국도 유류세 체계 개편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리=나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