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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프레레호 좌초 국내파에 무게 … 차범근, 포터필드 급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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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수원 삼성의 차범근(왼쪽) 감독과 부산 아이파크의 이안 포터필드 감독.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결국 옷을 벗었다.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사실상의 경질'이다. 지난해 6월 18일 한국 축구대표팀의 다섯 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된 본프레레는 432일 만에 물러나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23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었다. 중간 휴식을 겸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22일 저녁 본프레레 감독이 협회 대외협력국에 '더 이상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기술위원회에서 논의한 끝에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본프레레 감독이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본선에서 국민과 협회가 바라는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여론의 거센 퇴진 압력에 시달리던 협회가 '경질'이라는 나쁜 모양새를 보이지 않기 위해 본프레레에게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본프레레는 21일 프로축구 올스타전에 와서 "물러날 뜻이 전혀 없다. 시간을 더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위는 9월 2일 회의를 다시 열어 후임 감독 선임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상은 유럽 등 외국인 감독, 국내 프로팀을 맡고 있는 외국인 감독, 국내 지도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회택 위원장은 "전임(前任) 기술위에서 정한 '영어에 능통해야 한다' 등 몇 가지 조건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내 감독 쪽에 무게가 실린 발언이다.

국내파로는 월드컵 본선을 이끌었던 김정남(86멕시코). 김호(94미국).차범근(98프랑스) 감독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이 중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의 '차기 감독'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제는 차 감독의 의중이다. 프랑스월드컵 본선 도중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고, 더구나 10년간 뛰었던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아들인 차두리와 함께 출전한다면 프리미엄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힘들게 다시 세운 명예를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 수원 구단은 "축구협회에서 공식 제안이 오고, 차 감독이 수락한다면 삼성 그룹 차원에서 검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해외의 외국인 감독을 다시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필리페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 루디 펠러 전 독일 대표팀 감독 등이 거론되긴 하지만 대상을 섭외하고 접촉해서 데려오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액 연봉도 부담스럽고, 한국이 2002월드컵 이후 두 번이나 감독을 경질하는 바람에 대외 이미지도 나빠졌다.

그런 점에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를 3년째 이끌고 있는 이안 포터필드 감독에게 눈길이 쏠린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잉글랜드 첼시 감독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 부산에 부임해서는 자신의 축구 색깔을 밀고 나가 뚜렷한 스타 없이도 팀을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부산의 한 관계자는 "포터필드는 자신을 데려온 정몽규 구단주와의 신의를 중요시한다. 축구협회가 정 구단주를 통해 제안을 한다면 그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jerry@joongang.co.kr>

본프레레 인터뷰
"연습시간 보장않고 비판만 완성단계서 물러나 아쉽다"

본프레레 감독은 숙소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우디아라비아전 패배 이후 사임을 결정하고, 22일 저녁 축구협회에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소감은.

"축구팬과 언론 등에서 2002년 팀과 지금의 대표팀을 비교했다. 훈련 시간이나 대표팀에 대한 지원 등을 봤을 때 그건 공정한 것이 아니다. 그때만큼 지원을 하지 않고 그 정도의 기대를 하는 것은 공정한 게 아니다. 나는 지난 1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테스트했다.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상황에서 물러나는 게 아쉽다."

-왜 그만두게 됐는가.

"환경이 더 좋지 않아 그만두려고 했다. 동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여론 및 언론의 압박을 받아 그만둘 생각을 했고, 사우디에 패한 이후 결심했다."

-아쉬운 점은.

"항상 강조했듯이 시간이 없었다. 이틀 동안 선수들을 제대로 된 상태로 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이틀간 훈련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감독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다. 나는 2002년을 경험한 나이 든 선수들을 뺀 후 젊은 선수들을 기용했지만 경험이 아무래도 떨어졌고, 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동아시아 경기대회를 돌아보면 중국.일본 등과의 경기에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한 열흘 정도 손발을 맞춘 후 북한전에서는 좋은 경기를 펼쳤다."

-한국 축구팬이나 협회에 바라는 점은.

"너무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연습할 시간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비판만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연합뉴스]

사우디 패전 뒤 경질 결론 자진 사퇴 받아놓고 회의
기술위, 감독 퇴진 결정까지

▶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右)이 회의를 시작하기 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본프레레 감독 경질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23일 오전 10시30분 시작됐다. 축구협회에는 3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왔다. 낮 12시가 넘어도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오후 1시30분쯤 정회를 하고 기술위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 그때까지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모두 갑론을박이 치열한 것으로 생각했다. 오후 2시30분쯤 본프레레 감독을 교체키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회의가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감독 교체를 결정한 상태에서 '시간 끌기'를 했던 것이다.

동아시아대회 졸전 이후 "본프레레를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교체할 생각이 없다"던 축구협회는 본프레레 감독에게 마지막 기회였던 사우디전(17일)에서조차 허망하게 패배하자 경질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러고는 본프레레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23일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본프레레의 퇴진을 발표하면서 "본프레레가 22일 저녁 대외협력국으로 전화를 해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삼현 대외협력국장은 "사실은 22일 저녁에 본프레레와 만났다"고 실토했다. 다음날 감독 경질을 논의하는 기술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고, 모양새 좋게 자진 사퇴하도록 막후 역할을 한 것이다.

결국 기술위는 그간의 대표팀의 경기력과 본프레레의 문제점 등을 숙의할 필요도 없었고, 경질 여부에 대해 표결을 할 필요도 없었다. 본프레레 감독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강신우 부위원장은 "사퇴를 수용하는 데 반대한 기술위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본프레레를 영입하고, 그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던 기술위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축구지도자협의회는 "기술위원 전원이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물러났을 때는 김진국 위원장이 이끌던 기술위원 전원이 사퇴했다. 이회택 위원장은 "책임론이 나올 수 있지만 다 물러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까지 나 몰라라 물러나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며 새 감독을 선임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

10~11월 3차례 평가전

◆ 대표팀, 향후 일정은=독일월드컵 본선 개막일은 2006년 6월 9일. 조 추첨은 올해 12월이다. 한마디로 시간이 없다. 축구대표팀은 10월 초 다시 모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데이인 10월 12일 이란대표팀을 불러들여 친선경기를 한다. 이후로는 구체적인 경기 계획이 없다. 다만 11월 중에 두 차례 더 유럽팀과 A매치를 할 예정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강한 팀과 경기해야 한다는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의 교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내년 1,2월 중에는 유럽 전지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일 때여서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 모으기도, 적당한 상대를 구하기도 어렵다. 결국 월드컵 개막 30일 전인 내년 5월 10일에나 모두 모여 본격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

허진석 기자<huhba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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