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제조비법 외아들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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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씨 고집'이 '드링크 신화' 하나를 만들었다.

한 병에 500원에 불과한 비타500은 지난 6개월 동안 58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드링크시장에서 41년 동안 정상자리를 지켜온 동아제약 '박카스'를 제쳤다.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은 "비타500은 평생을 고생한 나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비타500'의 성공비결로 먼저 '발상의 전환'을 꼽았다. 비타민C는 알약이나 가루약으로 만들어 팔아야한다는 고정 관념을 깼다는 것이다.

2000년 9월이다. 사업본부장인 김현식 전무가 회장실에 들어와 "비타민C가 인기인데 음료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쳤다. 그는 바로 비타500을 반드시 일반의약품이 아닌 음료로 당국의 허가받을 것을 지시했다.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돼 약국에서만 유통되는 박카스를 겨냥한 것이다.

문제는 맛이었다. 비타민C는 신맛이 강하다. 첫 시제품으로 가져온 비타500은 신맛이 너무 강해 마시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서 '최씨 고집'이 발동했다. 그는 연구진이 가져온 시제품을 19차례나 폐기 처분했다. 그렇게 6개월이 걸려 지금의 맛이 탄생했다. 비타500이 잘팔리자 동종 업계에서 비슷한 제품이 30개 이상 쏟아냈다. 그러나 비타500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최 회장은 "비슷한 제품이 많이 나왔지만 여러 성분을 배합하는 기술은 베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타500의 제조법을 아는 사람은 광동제약에서 최 회장 외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고 한다. 최 회장의 외동아들이면서 회사 경영을 맡고 있는 최 성원(36) 사장도 모른다. 최 회장은 "내가 죽을 때쯤 비결을 넘겨줘야지"라며 웃었다.

비타500을 개발한 기술자는 5년만에 주임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물론 비타500에도 위기가 있었다. 매출이 매달 50%이상 급성장하던 지난해 4월이다. 대기업인 모 음료회사에서 비타민C 음료를 내면서 유리병을 생산하는 자회사에게 광동제약에 유리병을 공급하지 못하게 했다. 전국 유통상들이 비타500을 달라로 아우성을 쳤다. 다행히 다른 유리병 공급업체에서 병을 줘 어려움을 이겨냈다.

최 회장은 1936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에 '조센징'이라며 집단 따돌림을 하던 일본인 학생들을 때려주고 학교를 그만뒀단다고 한다. 그해 8월 광복을 맞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쪽바리'라고 따돌림을 당했다. 한국말이 어설펐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4학년까지만 다니고 학교와는 인연을 끊었다. 집안이 어려웠기에 어차피 돈을 벌어야하는 입장이었다. 살기 위해서 나무장사에서부터 수산물 행상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제약회사를 세운 것은 1963년. 당시 유행하던 경옥고 외판사원을 하다가 뒷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직접 제조에 나선 것이 광동제약의 시발점이다.

글=최준호.김필규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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