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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맥 이을 대책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문 한학자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끊어질지도 모를 한문학의 맥을 이을 집약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렇다할 대응책도없이 오늘에 이른 학계-.
며칠전 또 한분의 원로 한문학자인 조규철옹을 잃음으로써 일말의 위기감조차 맞고 있다.
현재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한적류는 무려 l백50여만권에, 40여만점의 고문서도 있다. 이처럼 방대한 문헌의 민족문화 유산을 물려받은 나라도 드물다.
오늘날 민족문화의 창조적발전계승은 목청만 높여서 되는게 아니고 남겨진 문화유산의 발굴과 정리를 토대로 이뤄진다. 그만큼 관계문헌인 한문의 해독은 시급한 실정이며 이 작업은 우리의 역사와 사상사, 교육과 문학, 어학과 민속연구등 안걸리는데가 없다.
그러나 어렵고 난해한 한문해독작업을 막히지않고 해낼수 있는 학자들은 흔치않다. 열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정도인데다 대부분 70∼80대의 고령들.
민족문화추진회 이계황사무국장은 한문에 능통한 이들의 지식을 온전히 이어받지 못하면 우리의 전적들은 휴지화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면서 「한문학의 종자」를 이을 준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고전국역에 대한 열의와 성과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민족문화추진회를 중심으로 몇개 기관에서 꾸준한 국역작업을 펴왔으며 민추부설국역연수원과 선경이 지원하는 고등교육재단등에선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국역사 내지 한문학자 양성에 주력해 왔다. 그간 국학붐을 타고 사설학원의 한문강좌도 붐볐으며 지방에서 한학당 서당같은게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한문학자 양섬이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닌 만큼 만족스런 결과도 아니었다. 이에 원로한문학자 임창순씨는 사재를 털어 경기도 양주군에 후진양성을 위한 서당을 차렸으며 신호열씨는 급한 대로 자택의 안방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등 몇몇 학자들이 응급책을 쓰고 있으나 아주 어렵게 꾸려나가고있는 실정.
원래 한문학의 계승은 순수 언어적 차원과 현대적 의미의 재발굴로 나눠볼 수 있으나 분석력이 약한 재래적방법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문법의 체제화가 겸행돼야만 효과적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신·구학을 겸한 학자는 극히 한정된 형편.
이점을 고려하면 현재 재래적인 한문교육법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사서삼경정도를 외지 않고는 전적을 제대로 보기힘든 한문학에서 예전의 서당식 교육은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성균관대 송재소교수는 옛날식으로 스승밑에서 차시중을 들면서 한마디식 듣는것까지도 모두 학문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정책적 배려나 재단의 지원으로 소수의 정예소장학자들을 모아 3∼5년만 스승과 침식을 같이하며 교육시킨다면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수 있을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원로학자들이 타계하기 전에 한문학의 정확한 계승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영구히 풀지못할 의문을 남김으로써 우리의 문헌유산이 사장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판본의 활자본화와 띄어쓰기, 구두점, 인명·지명 표시작업은 원로학자들과 함께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이는 전문 한학자의 양성과 함께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일본만해도 다돼있는 이 작업을 우리로선 당장 눈앞의 전적몇권의 번역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정책당국은 한글의 사용이 확대되는 대세에 따라 전문 한학자의 양성은 더욱 필요하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정책적인 결단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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