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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은 국회 … 썰렁해진 재건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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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12월 조합을 설립하고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잠실동 주공 5단지. 3일 오전 아파트 상가에 몰려 있는 부동산중개업소 38곳에선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개업소들에 급매물 안내문이 부쩍 늘었다. 3930가구에 이르는 이 아파트단지에서 지난달 성사된 매매 거래는 3건에 불과했다. 지난달 중순부터는 아예 거래마저 끊겼다. 두 달 전인 9월엔 19건이 거래됐다. 9월 11억6000만원에 팔리던 76㎡형(이하 전용면적)의 지금 시세는 10억8000만원 선이다. 한 달 새 3000만~4000만원 빠졌다. 잠실박사공인 박준 사장은 “호재였던 재건축부담금 폐지 등의 시행이 마냥 늦어지고 있어 잠시 반짝하던 매수세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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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발 냉기가 재건축시장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정부가 9·1 대책에서 추진키로 한 재건축 규제 완화 3법이 국회에서 발목 잡히면서 거래가 줄고 가격이 떨어졌다. 회복세를 보이던 주택시장은 재건축시장 한파를 맞아 다시 위축되고 있다. 국회에 올라가 있는 법안은 분양가상한제 완화를 담은 법안과 재건축부담금을 폐지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폐지법안, 주거환경정비법 등이다. 서울 개포동 재건축단지들인 주공 1~4단지와 시영에서 거래된 아파트가 9월 50가구였으나 지난달엔 8건이었다. 대치동 은마는 11월에 한 건도 거래 신고되지 않았다. 9월 거래량은 20건이었다. 9월 9가구가 거래된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 4차에서도 지난달 팔린 집이 한 채도 없다.

 매매가격도 하락세다. 9월 6억원 선이던 개포동 시영 40㎡형이 이달 들어 5억7500만원으로 두 달 새 3000만원 가까이 내렸다. 같은 동 주공 1단지 41㎡형도 9월 7억2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6억60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온다. 개포동 세방공인 전영준 사장은 “9·1 대책 약발이 두 달 정도 ‘반짝’하더니 없어졌다”며 “가격이 그 이전 수준으로 내려앉았는데도 매수세는 없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 완화와 재건축부담금 폐지로 재건축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관련 법안들이 야당의 반대 속에 국회 논의 테이블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한 채 이번 정기국회(9일까지) 내 처리를 낙관하기 어렵게 돼서다. 재건축부담금이 올해 안에 폐지되지 않으면 2년 부과 유예가 끝나 내년에 부활한다.

 상한제와 부담금은 재건축 주민들의 사업비용과 직결된다. 분양가상한제가 유지되면 조합원 이외 일반에게 분양하는 물량의 가격이 제한돼 분양 수입이 줄어든다. 재건축부담금은 사업 초기부터 입주할 때까지 해당 지역 평균보다 더 오른 집값에 매겨진다. 주거환경연합이 최근 서울시내 4개 재건축단지를 대상으로 추정한 결과 분양가상한제가 풀리면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최고 17%(1500만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J&K정비사업 백준 사장은 “분담금 감소분만큼 사업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수요가 늘었는데 시행되지 않으면 투자성이 이전 상태로 나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불쏘시개 역할이 기대됐던 재건축시장마저 다시 식자 후유증은 부동산시장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은 3일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을 8523건으로 집계했다. 10월에 비해 21.7% 급감했고 9·1 대책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강남구는 11월 한 달 새 33.5% 감소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이 지난주 상승세를 멈췄다. 8월 이후 16주 만이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9·1 대책의 최대 수혜주인 강남권 재건축이 실망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시장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전세난도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재건축조합들이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올해 안에 일반분양 계획인 관리처분 신청을 서두르고 있어서다. 관리처분 인가가 나면 이주·철거에 들어가기 때문에 올해 관리처분을 신청하는 단지들의 이주가 내년에 한꺼번에 몰리게 된다. 사업 승인을 받고 관리처분 인가 신청 전인 강남권 아파트가 1만여 가구다. 그만큼 강남권 주택 재고물량이 없어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상한제와 부담금 관련 법안이 이른 시일 내에 처리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진흥실장은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예정된 정책마저 시행되지 않으면 모처럼 살아난 불씨가 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권대중(부동산학과) 교수는 “맥이 빠진 주택시장에 정책 신뢰성과 확실성이라는 활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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