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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 후보 지명] 대법관 인사에 '진보 바람'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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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차기 대법원장에 지명된 이용훈(63)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에 대해 판사들과 변호사들은 대체로 '무난한 인사'라는 견해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지명자가 대통령 탄핵 변호인단에 참여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대통령 대리인단에서 활동한 경력 등으로 참여정부의 '보은 인사'로 낙점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노 대통령이 각종 정부 고위직을 보은 인사로 채운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사법부의 수장직에 자신의 탄핵 대리인을 임명한 것은 삼권 분립의 중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부적절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명자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면서 향후 국회의 임명 동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김종빈 검찰총장(전남 여수)과 천정배 법무장관(전남 신안)에 이어 대법원장(전남 보성)도 호남 출신이 발탁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최종영 현 대법원장은 다음달 23일 퇴임한다.

◆ 대법관 인선의 변화 어디까지=이 지명자는 평소 "사법부에 대한 국민불신은 사람과 시스템 모두에 있다"고 말해 왔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 변호인단 출신으로 사법개혁을 추진 중인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사법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법관 인선에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 신임 대법원장은 10월부터 내년 7월 까지 대통령이 대법관 9명을 새로 임명할 때 제청권을 행사한다. 대법관은 13명이다.

인선 결과에 따라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대법원의 성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공안.과거사 문제 등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진보 성향으로 기울게 되면 기존의 사회적.정치적 가치기준이 크게 달라지는 혼란도 예상된다.

이 지명자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시환 변호사 등 법조계 내 진보세력인 '우리법 연구회'인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이밖에 공판중심주의의 도입, 법조 일원화, 로스쿨 시행 등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진행 중인 사법개혁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도 신임 대법원장의 몫이다.

◆ 정치적 중립성 논란 가열될 듯=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이 내정자의 자질 등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탄핵 당시 노 대통령 편에 서서 대표 변호사를 했던 사람인 만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재판 등 정치적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원의 수장이 현직 대통령을 변호한 만큼 야당 인사가 관련된 사건에서 공정한 재판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법조계의 충분한 여론수렴 등을 통해 신망 있고 사법개혁 의지를 갖춘 적절한 분이 지명됐다"고 평가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평가가 다르다. 대한변협 하창우 공보이사는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맞는 인사로 사법부 독립이 훼손된다"며 "이 지명자가 사법부를 보호할 소신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강훈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요청을 받아 변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법관으로서 정치적 중립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 대법원장은=대통령.국회의장과 함께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헌법상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

대법원장에게는 대법관에 대한 임명 제청권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의 후보 추천권을 갖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2000여 명의 법관과 1만여 명의 법원공무원에 대한 인사권과 법원 내부의 예산권 등을 행사한다.

국회는 이 지명자의 임명 동의안을 제출받으면 20일 내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 여부로 이를 처리하게 된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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