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부대, 밤마다 '짝퉁 성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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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 왼쪽이 롤렉스 진품.

▶ 오른쪽이 수입양주 진품.

▶ 왼쪽이 오리지널버버리.

6일 오후 서울 동대문 한 패션 상가의 액세서리 매장. 이곳 100여 점포 중 절반 이상이 구찌.샤넬 등 명품 핸드백과 지갑 등을 팔고 있었다. 진열한 명품은 몇 점이 안 됐다. 하나같이 진열장 위에 루이비통.샤넬.구찌 카탈로그를 펼쳐 놓고 있다.

한 가게에서 기자가 카탈로그를 들여다 보자 주인이 말을 건넸다. "카탈로그 값의 15% 정도만 받습니다. 정교해서 진짜와 구분이 안 돼요." 그는 "진열한 것 말고도 물건이 많다. 카탈로그에서 고르면 바로 갖다주겠다"고 덧붙였다.

동행했던 위조품 조사 전문업체 마크로드의 이종원 과장은 "부근 주차장에 세워 놓은 봉고가 비밀 창고"라고 귀띔했다. 단속에 걸려도 소량만 판매한 것처럼 꾸며 처벌을 받지 않으려고 매장에는 일부만 갖다 놓는다는 설명이다. 같은 날 오후 9시 서울운동장 옆 이른바 '짝퉁 골목'. 길 가운데 폭 1m 정도 사이를 두고 양 옆으로 상인들이 리어카 가판에 나섰다. 공무원 등이 단속을 하는 낮시간을 피해 야시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명품 ○○지갑은 1만원, △△청바지는 2만원을 받았다. 골목은 짝퉁 명품을 사려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마크로드 강점오 사장은 "짝퉁 골목 행상들은 영세 노점상이라고 정부가 단속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짝퉁 골목 자릿세가 수천만원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강 사장은 설명했다. 패션 명품 짝퉁 시장이 여전히 극성이다. 검찰.경찰.특허청 등이 합동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을 피하는 수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짝퉁 도.소매상 및 제조업자 간에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임대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물건을 건네는 등 마약.뇌물 거래를 방불케 하는 수법이 동원된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산 가짜에 피해를 보는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외국 명품 짝퉁 판매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짝퉁 판매도 퍼지고 있다. 유럽 명품업체 B사는 "한 인터넷 사이트가 우리 제품 가짜를 대량 팔고 있다는 의혹이 생겨 본사에 진품 확인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짝퉁 왕국'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세관에서 적발된 짝퉁 물품 중 한국산이 50.3%였다. 중국산(36.7%)보다 많다.

관세청은 일본 세관에서 걸린 한국산 짝퉁 중 상당수가 실제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국을 거쳐간 환적물품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세관이 위조품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국이 국제적인 짝퉁 유통의 거점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권혁주.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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