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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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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림동에서 구로동 가리봉 오거리에 이르기까지의 너른 지역이 공단과 그 주변 노동자 밀집지역인 셈이었다. 나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구로 시장과 극장, 그리고 버스 종점 부근을 배회했다. 여러 공장들이 모여있는 공단에서 구로동 쪽으로 나오는 큰 길가에 작은 주점이며 포장마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 공원들이 제일 붐비던 한 포장마차에 가서 죽치기로 작정했다. 중년의 부부가 장사하던 포장마차였는데 어디나 그렇듯이 어묵 국물에 국수도 말아 팔고 닭똥집이나 염통 같은 꼬치안주에 엉뚱하게 인절미.개피떡 따위도 팔았다.

밤 아홉 시 전후가 제일 붐볐고 연장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노동자들이 집에 가서 저녁 지어 먹기도 어렵고 돈도 더 들기 마련이라 국수 한 그릇 시켜 놓고 소주에 꼬치안주로 때우기 마련이었다. 야근 들어가면서 어묵이나 떡을 사먹는 여공들도 있었다. 요즈음처럼 떡볶이라든가 튀김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한 사날 찾아가 죽치다가 내가 산 소주잔을 권했더니 주인 남자는 시키지도 않은 자기 인생 얘기를 하면서 동무로 받아들였다.

그는 소농이었다. 열 마지기도 못 되는 농토에 처자식과 부모 모시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고리채를 탕감해준다고 군사정부는 떠들었지만 채권자들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팔지도 못할 초가삼간은 그냥 버리고 그야말로 심야에 야참 지어먹고 서울로 줄행랑을 쳤다. 산동네로 찾아가 단칸방을 얻어 두 부부가 공사장에 나아가 질통도 지고 허드렛일을 하며 견디었으나 부모님 차례로 돌아가고 아내는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비실대더니 누운 채로 일년여 만에 또 가버린다. 큰 녀석은 군대에 나가 말뚝을 박고는 돌아오지 않았고 두 딸 중에 큰 년은 미용사 다닌다고 나가서 소식이 없었다. 그는 엿이나 튀밥을 받아다가 고물수집을 하러 다녔다. 현재의 처는 그런 길에 시장 골목에서 만나게 되었다. 남의 자식이 한 놈 있고 자기 작은 딸내미가 있으며 둘 사이에 새로 낳은 꼬마가 벌써 여섯 살이다. 그들은 공단을 처음 지을 때 허드렛일을 하러 다니면서 이 동네로 흘러들게 된다. 공단이 끝나고 개천을 경계로 밭이 시작되는 끝머리에 자투리 땅이 길게 이어졌는데 이곳에 판잣집 동네가 들어서게 된 터였다. 나는 나중에 '돼지꿈'에서 이 동네를 묘사했다.

벌거숭이 붉은 언덕과 주택부지들이 펼쳐져 있고, 언덕 한가운데에 굴뚝만 흉물스레 높이 솟은 기와공장이 홀로 서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기와공장의 굴뚝에서 솟은 불티가 어두운 하늘 속에서 차츰 선명하게 반짝였다. 언덕 아래로 빈터의 곳곳에 간이주택과 낮은 움막집들이 모여 있었다.

강씨는 리어카를 끌면서 화학공장의 뒷담 옆으로 해서 회색빛 폐수가 늘 괴어 있는 저지대를 지나갔다. 폐수 속에 높다란 쓰레기더미가 군데군데 비쳐 보였다. 그는 낡은 코르덴 당꼬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뚫어진 밀짚모를 눌러썼다. 옷차림이야 넝마에서 골라 입은 탓이겠지만, 표정마저 가뭄에 탄 시냇가의 돌 꼬락서니로 낡게 퇴색된 것 같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십대였으나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왕년의 목도꾼답게 어깨가 딱 벌어졌다. 강씨는 누렇게 변색한 옛날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그는 녹슨 양철로 얼기설기 움막을 지은 재건대 지부의 작업장 가운데로 리어카를 끌고 지나갔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대여섯 사람이 분주하게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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