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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은행 "3000억 미만 배당" … 한국 철수 의구심이 논란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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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배당을 놓고 벌이는 외국계 은행과 금융당국의 줄다리기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상황은 더 복잡했졌다. 지난해 이후 외국계 금융사들의 수익이 크게 쪼그라들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진 탓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침체에 본사 사정이 급해진 외국계들은 그간 쌓아둔 이익금을 한푼이라도 더 보내려 한다. ‘한국시장에서 짐싸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비례해 논란이 거세지는 이유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관계자는 1일 “현재 배당을 계획하고 있으며 금액은 3000억원에 훨씬 못미칠 것”이라면서 “정확한 금액은 내년 3월 주총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적정성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리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C은행은 한때 1조원이 넘는 배당을 하는 것도 시나리오 중 하나로 검토했다. 그간 누적된 이익과 캐피털과 저축은행을 매각한 금액 등이 포함된 액수다. 하지만 이를 접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검토하다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미 그 안은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최근 SC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벌이고 있다.

 ‘1조원 배당’은 일단 헤프닝으로 끝났다. 문제는 외국계 은행의 ‘먹튀 논란’과 당국의‘주먹구구식 대응’이 이어지면서 소모적인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당은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내에서 이뤄진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SC가 당초 검토했던 1조원대의 배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사정이 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배당은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과도한 배당은 자본 적정성에 문제를 줄 수 있어 감독대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본을 쌓아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기준을 어느 수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는 통상 국제기준 이상으로 당국이 정하는 ‘권고 기준’이 적용된다. 은행 업황 전망을 고려한‘정성적 판단’도 개입된다. 이러다보니 외국계 은행들은 이사회 결정에 앞서 배당액을 금융당국에 알리고 사실상 ‘승인’ 받는 절차를 거친다. 금감원이 검사 과정에서 확보한 SC의 연초 ‘배당 계획’ 문서에 금융당국을 향한 설득 작전과 여론전 계획이 포함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고배당’ 비판에 대한 외국계들의 항변도 이어지고 있다. SC은행측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해 한국에 진출한 이후 4조6000억원을 투자해 9년 반동안 3010억원을 본사에 배당했다”면서 “연간 수익률로 따지면 약 0.7%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박진회 신임 한국씨티은행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한국씨티은행의 배당성향이 낮았기 때문에 배당 여력은 굉장히 높다”고 우회적으로 고배당 논란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은행들의 배당성향은 평균 29%로 국내(18%)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홍콩(42%), 싱가포르(41%) 등 금융허브들은 40%를 넘어선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배당에 대한 감독당국의 지나친 간섭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이라면서 “금융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금융회사에 맡겨 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계 역시 민감한 시기에 대규모 배당을 계획하면서 논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이후 외국계 은행들의 실적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SC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2008~2009년 4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169억으로 반토막이 났다. 급기야 올해는 3분기까지 114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거액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한 영향이다. 구조조정에다 대규모 배당 계획이 나오면서 이들이 철수 준비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당국내에서도 싹트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SC측은 이를 일축했다. 아제이 칸왈 SC은행 행장은 “투자자에 배당을 통해 수익을 돌려주는 것도 한국에서 은행 사업을 계속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민근·심새롬 기자 jming@j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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