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방송용 스포츠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그를 북한과 맺어준 계기는 축구다. 축구광인 그는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북한팀의 경기를 비디오로 보고 모든 선수의 등번호와 포지션을 외울 만큼 팬이 됐다고 한다. 선수들의 이후 얘기를 취재하고 싶어 4년여 동안 북한 당국과 꾸준히 접촉하고 제작비를 모은 끝에 촬영허가를 얻어 2001년 4월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이후 박두익을 비롯한 당시의 선수들을 만나 완성한 것이 바로 첫작품'천리마 축구단'이다. 이 작품이 북한 TV에서 10여회나 방송될 만큼 인기를 끈 덕분에 '어떤 나라'의 촬영 역시 순조로웠다고 한다.
"김일성광장에서 촬영을 하다 제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어, 영국놈'하더라구요. 영국도 한국의 우방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천리마 축구단'을 만들었다니까 제일 좋은 자리로 데려가서 촬영을 하게 해줬어요. "
그는 "촬영이나 편집과정에서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제일 힘들었던 경험으로 '어떤 나라'의 여중생들을 따라 평양에서 기차로 무려 31시간이나 걸리는 백두산 수학여행을 취재했던 일을 꼽았다.
'어떤 나라'의 촬영 때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북한 전체에 긴장감이 팽배한 시기였다. "미국이 공격하면 한국전쟁 때 그랬듯이 맞서 싸울 준비가 돼있다고들 하더군요. 근데 자꾸 거듭해서 물어보니까 누가 전쟁을 원하겠느냐고, 우리도 평화를 원하지만 선택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그는 "체제 내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서 북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을 소재로 한 세번째 영화의 촬영을 이미 마쳤다. 60년대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탈영해 월북한 미군 병사 네 사람의 이야기다. 추가적인 자료조사를 겸해 10월 북한을 방문하는 길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 효도관광을 겸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