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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 "손 한번 잡았으면" 화면 만지며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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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이산가족 화상 상봉이 이뤄진 15일 서울 남산 적십자사에서 남측 정인걸씨 가족이 북측 형인 정병연씨의 모니터 화상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마니 여기 보시라요. 제발 한번 보시라요."

50인치 대형 화면 속의 황학실(76) 할머니는 눈물을 연방 떨어뜨리며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기를 애원했다. 할머니 옆의 언니 황보패(78) 할머니도 연거푸 "오마니"를 외쳤다.

하지만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1층 이산가족 상봉실에서 휠체어에 힙겹게 앉아 있는 김매녀(98) 할머니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딴 곳만 바라봤다. 너무 늦은 것이었을까. 뒤늦게 화면을 통한 상봉이라는 기회를 얻었지만 1년 전 찾아온 치매로 50여 년 동안 꿈속에서 찾아 헤맸던 두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와 함께 상봉장에 나온 딸 봉숙(69)씨는 "언니들 줄 거라며 냉장고며, 냄비며 세간을 모으는 게 어머니의 취미였다"며 "눈빛으로나마 두 딸을 만났으니 어머니가 한을 달랬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15일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에서 이산가족들이 광케이블을 타고 온 혈육의 얼굴과 목소리에 눈물을 쏟아냈다. 광복 60돌을 맞아 처음으로 실시한 이산가족 화상 상봉으로 남북의 40가족 226명이 부모형제의 안부를 확인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실시된 상봉은 서울 대한적십자사 본사 등 전국 6개 도시와 평양상봉장을 광케이블로 연결해 화상 카메라와 모니터를 통해 진행됐다.

2m 앞에 놓인 대형 화면으로 흩어졌던 혈육을 확인한 이들은 눈물을 쏟고, 모니터에 비친 얼굴을 매만졌다.

월북했던 오빠 정병연(73)씨를 만난 동생 영애(69)씨는 상봉실 바닥에 엎드려 오빠에게 큰절을 올렸다. 오빠도 영애씨가 준비한 부모님 영정을 향해 "땅속에서라도 기뻐하십시오"라며 절을 했다. 1.4후퇴 때 북에 두고 온 세 딸의 얼굴을 본 박여환(94)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내 말 들려"라는 큰딸의 외침에 "그래…"로 화답했다. 할머니는 상봉이 끝나기 전 딸들과 '고향의 봄'을 함께 불렀다.

상봉자 중 최고령자인 남측 이령(100) 할머니는 북한의 손자 내외와 상봉했고, 강근형(93) 할아버지는 헤어진 뒤 54년간 자식들을 키우며 수절해 온 북측의 부인 김현숙(77)씨를 화면으로 만났다.

이산가족들은 화상 상봉 시스템의 화질과 음질에는 대체로 만족했지만 직접 만나 온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데에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날 오전 대한적십자사 본사의 상봉장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화상 상봉 확대 실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인성.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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