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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부, 우토로 문제 성의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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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이 되는 올 8.15를 맞이해 과연 우리가 일제 식민통치 역사로부터 진정한 광복을 한 것인지, 그리고 제2의 독립인 평화통일의 길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등에 대해 여러 가지 감회가 교차한다.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과 그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한국인은 일본이 아직도 일제 식민통치와 과거 침략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과 아울러 과연 이러한 이웃과 21세기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논의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의 식민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가 바로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마을인 우토로에 사는 조선인의 생존권 문제다. 일본국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에는 아직도 65가구 약 200명의 재일 조선인이 살고 있다. 이들은 식민지 시대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그 자손들이다.

이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공사현장의 임시숙소 자리에 남아 차별과 빈곤 속에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부동산업자에게서 철거통고서와 소장이 날아왔다. 이곳의 군 비행장 건설을 담당했던 군수회사의 후신인 닛산이 주민 몰래 토지 6400평을 팔아버린 것이다.

닛산으로부터 토지를 매수한 부동산업자의 제소에 대해 일본 사법부는 주민들에게 철거를 명령했다. 이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물론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거주권, 나아가 생존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20여 년 동안 우토로 주민과 일본의 양심세력은 우토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 왔으나,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민사상 토지소유권 문제로 인식해 사법적.행정적 개입을 꺼렸다.

일본은 한.일 기본조약 제2조 1항의 "양 체약국은… 양국 간 및 양국 민간에 청구권의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는 것을 근거로 한.일 관계의 과거 청산이 모두 끝났다는 인식으로, 우토로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 기본협정은 6개 문서 어느 곳에서도 일본이 불법 식민지배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는 문제가 많은 매국조약이다.

강제징용을 당해 고통을 겪고 있는 우토로 주민의 생존권 문제와 같은 일제식민지 피해자 문제를 방치해 두고는 진정한 광복이라 할 수 없다. 더구나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 정부는 양국 간의 우호관계나 최소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버림받은 우토로 조선인의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단기적으로는 한.일 양국 정부의 정치적 해결이 우선돼야 된다. 당장 강제 철거대상으로 자활능력이 없는 생활보호가구에 대해 우선적인 구제가 이뤄지도록 한.일 양국 간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국제인권 A규약(사회적.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인권규약)에 가입한 나라로서 생활보호대상인 조선인에 생존권을 보장하는 국내 특별입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우토로 토지의 매입이다. 한국시민사회는 '우토로 살리기 희망모금 캠페인' 발족식을 7월 21일 한국언론재단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 모였던 희망모금 대표 33인은 이 작은 목소리가 330명, 3300명으로 늘어나 삼천리 방방곡곡에 커다란 울림으로 퍼져나가기를 소망했다.

한국 시민사회가 스스로 나서서 시작한 '우토로 살리기 희망모금 캠페인'은 한.일 간 슬픈 역사를 청산하고, 우토로 주민과 아픔을 함께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큰 도덕적 압력을 줄 것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진정한 화해와 올바른 과거 청산을 위해 일본 정부가 '우토로 살리기'에 성의를 보이기를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대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