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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선거로 사흘간 업무 팽개친 건보공단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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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노조활동으로 정상적인 업무처리가 안 된다는 알림판을 설치한 서울의 한 건보공단 지사. [강정현 기자]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

“어이가 없네요. 민원인 입장이나 편의는 안중에도 없어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건강보험공단 지사. 아이를 안은 조대성(39·서울 송파구)씨 부부가 분통을 터뜨렸다. 건보료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민원창구 9개 중 4~5개에만 직원이 앉아 있었다. 27일에는 70~80명이 허탕 치고 돌아갔다. 28일 서울 강서지사에서 만난 박모(51·여)씨는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밥도 못 먹고 민원도 해결하지 못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대부분의 지사는 ‘노조 행사 관계로 업무가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27일 노조위원장 투표, 28일 노조 지역본부장 투표와 위원장 결선투표를 했다. 일주일여 전에도 지역본부별로 후보자 유세를 한다고 조합원들이 업무를 비웠다. 노조 선거에 사흘간 조합원들이 업무에서 이탈했고 ‘유급 휴가’ 처리됐다. 빈자리는 일부 간부가 대신했다. 건보공단은 직원 1만2700명의 83%(3급 차장 이하)가 노조원이다. 대다수가 자리를 비우니 전화가 될 리 없고, 방문해도 허탕 칠 수밖에 없다.

 11월은 건보공단 업무가 특히 바쁜 시기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기준이 되는 소득·재산자료가 새해 것으로 바뀌면서 건보 가입자의 불만이 급증한다. 올해 224만 세대의 건보료가 올랐다. 조씨가 찾은 지사는 100여 명의 직원 중 간부 8명이 남아 일을 처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의 한 지사장은 “증명서 발급 같은 단순 업무만 처리했다”며 “부과자료 변동, 장기요양등급 인정 같은 일은 손도 못 댄다”고 털어놨다.

 건보공단 노조는 9월까지 한 지붕 두 가족(사회보험노조·직장건보노조)이었다. 이전에도 ‘선거 휴가’가 있었지만 날짜가 달라 업무가 마비되지는 않았다. 노조가 통합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건보공단 노사는 단체협상을 갱신하면서 과거 관행을 고치지 않았다. 교대로 투표하거나 투표소를 늘리는 등의 여러 대안이 있을 텐데도 그랬다. 민간의 강성 노조도 위원장 선거에 하루 업무를 완전히 접는 경우는 흔치 않다. 건보공단의 처사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공기관이 행한 것이라곤 믿기 힘들다. 건보공단 고위 관계자와 노조 관계자는 “새 집행부가 꾸려지면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불신은 하늘을 찌른다. 건보공단은 잘못된 건보료 부과체계 때문에 한 해 5730만 건의 민원이 생긴다고 주장해 왔다. 제도를 아무리 잘 바꾼들 무슨 소용 있을까. 건보공단 노사가 지금처럼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를 버리지 않는 한 국민 불신 해소는 헛발질일 따름이다.

글=장주영 사회부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