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같은 기적 없었던 포항, 침통했던 황선홍

중앙일보

입력

굵은 빗방울만큼이나 포항 스틸야드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리그) 포항의 황선홍(46) 감독과 선수들 모두 표정이 굳었다.

포항은 3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 최종전에서 수원에 1-2로 역전패했다. 승점 58점(16승10무12패)을 거둔 포항은 같은 시간 제주에 2-1로 역전승을 거둔 서울(승점 58)에 득실차(서울 +14·포항 +11)에서 뒤져 4위로 밀려났다. 4년 연속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려는 포항의 꿈이 무산됐다.

포항은 어느 때보다 힘든 한 시즌을 보냈다. 포항은 2년 연속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 초 리그 8경기 연속 무패(7승1무)를 달렸지만 3~4일마다 경기를 치러 체력 소모가 컸다. 지난 6월에는 간판 미드필더 이명주(24)가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으로 이적해 전력 공백이 불가피했다. 리그 11경기에서 5골·9도움을 올린 이명주의 부재는 포항에 큰 영향을 미쳤고, 8월초 전북에 선두를 내줬다. 9월에는 팀 주축 미드필더 김승대(23)·손준호(22)가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에 차출됐고, 이달에는 공격수 고무열(24), 골키퍼 신화용(31)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잇따른 위기에 포항은 침착하게 대처하려 했다. 스플릿 라운드 이후 3무1패에 그쳤던 포항은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도 서울에 승점 3점 차로 앞서 있었다. 황선홍 감독은 "한번도 3위권 밖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는 막판에 울산을 제치고 우승도 해봤다. 선수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최근 2연패를 당한 수원을 최종전에서 만나 포항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후반 3분 김승대의 패스를 받은 김광석의 오른발 슈팅이 선제골로 연결됐을 때만 해도 포항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후반 막판 15분을 넘지 못했다. 후반 34분 수원 외국인 공격수 산토스(29)에 동점골을 내준 뒤, 후반 39분 수원 공격수 정대세(30)에 역전골을 허용하며 분위기에 단숨에 뒤바뀌었다. 포항은 강수일, 유창현 등을 앞세워 반전을 노렸지만 추가골을 넣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지난 시즌 울산과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결승골이 터져 역전 우승을 거뒀던 기적은 이날 없었다.

경기 후 황 감독은 내내 침통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는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결과를 받이들이기 어렵다"며 힘겹게 입을 뗐다. 패인에 대해 황 감독은 "여러모로 믿기지 않는 결과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많이 당황스럽다"면서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실점 장면에서 실수가 있었던 게 패배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힘겹던 한 시즌을 돌아본 황 감독은 "전술적인 변화가 독이 됐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공격진에 부상이 많아 정상적인 팀 컨디션이 아니다보니 전술적으로 바꿔보려 했는데 되려 독이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 시즌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 될 것이다. 포항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다음을 준비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포항=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