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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호사카 교수의 '반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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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올해 49세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독특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국립 도쿄대를 졸업한 어느 날 그는 한.일 역사관계 연구에 뛰어들 것을 결심한다. 대학에서 4년 동안 전공으로 매달렸던 금속공학 연구를 팽개쳤고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의 책임자 자리도 거절했다. 대학 친구들처럼 일류 기업의 성공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길도 포기했다. 고교 시절부터 품어온 역사학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다. '내 조상도 한반도에서 온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한국어 독습과 한.일 관계사 연구로 끌어갔다.

▶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

주변에 있던 재일 동포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그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 배경에 관심을 쏟는다. 몇몇 친구들끼리 만든 한글 시 낭송회에도 드나든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임에 참석했던 서울의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가족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986년 결혼에 골인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고려대에 제출한 '일본의 한국침략 배경 연구'(95년)와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동화 정책'이란 논문(2000년)으로 그는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열정을 쏟아낸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한국 국적을 선택한다.

장래가 촉망되는 도쿄대 졸업생이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뒤이어 한국으로 귀화까지 하려 한다니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인생을 걷고 있다며 걱정에 싸인 그의 3형제가 결사 반대했으나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단지 연로하신 부친에 대해서는 충격을 고려해 귀화 사실을 비밀로 하자는 것이 그들 형제의 유일한 합의 사항이었다.

호사카 교수의 길지 않은 인생 유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의 일본 연구가 한국학자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거침없이 할 말을 한다. 역사자료 수집과 분석에 철저하며 실증주의적이다.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반박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그는 일본 옛 지도뿐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원의 최근 지도까지 모두 분석해 냈다. 메이지 정부에 이어 88년까지도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연구 보고서(월간 NEXT 7월호 게재)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 측의 반응은 엄청났다. 호사카 교수를 매국노라고 질타하는 세력도 있고 사실적 자료를 보고 놀랐다는 네티즌도 많았다. 그는 일본 정부나 독자들의 비판과 이의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논쟁을 곧 재개한다. 그는 숨겨져 있는 역사자료를 토대로 일본 측 인식의 허구를 파헤친다.

호사카 교수와 한국인 사학자들의 연구 자세는 확실하게 다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어느 한국인 교수에게 역사적으로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양이 아니라 그는 논쟁에서 도망쳤다. 어떤 학자는 신빙성 없는 자료를 내놓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자신의 주장을 정연하게 펴지 못했다. 너무 단편적이고 연구의 깊이가 없었다. 어느 한국인 교수는 다분히 감정적인 내용의 반일적 원고 준비에만 매달렸다. 역사학계의 한 노교수는 그의 독도론에 대한 젊은 학자들의 이의 제기에 대해 "버릇없는 친구들 같으니- "라는 말로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려 들었다. 한국의 역사학계에는 옳든 그르든 성역이 있다는 비판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호사카 교수의 독도 등 역사 연구는 한국과 일본에 있는 모든 자료에 접근한 다음에 이뤄진 것이다.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쟁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일부 학자들의 연구는 일회적이며 감정적이고 특정한 선입관에 빠져 있다. 자료 접근도 게을리 한다. 지원이 없다는 현실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몇 번 격론을 벌이면 그들 실력이 곧 바닥난다. 20년 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한국 정부와 학계의 반성이 촉구되는 부분이다. 호사카 교수의 '반일'은 외로워 보인다. 그러나 한국 땅에 발을 딛고 일본적인 방법으로 일본을 연구하는 진지한 자세가 우리들의 눈을 끈다.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