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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일-중공 관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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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즈끼」(영목선행)일본수상이 지난달26일부터 1주일간의 중공방문을 마치고 l일 귀국했다.
원래 그의 이번 방문은 일-중공국교 정상화 10주년을 기념하는 양측 수상교환방문계획에 따른 의례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러나 교과서왜곡문제, 중공의 새 지도체제 출범, 호요방 총서기의 대소관계개선발안, 김일성의 중공방문 등 중공을 둘러싼 동북아정세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의례로만 그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
더욱이 중공이 12전 대회에서 국민총생산을 2천년까지 4배로 늘린다는 의욕적인 생산노선을 채택함으로써 중공에 대한 경제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대 중공경협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 일-중공수뇌회담을 실무회담으로 변질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도 공동성명이나 공동신문발표 조차 내지 않음으로써「스즈끼」수상의 중공방문은 그 성과에 의문을 갖게 하는 한편 앞으로의 일 중공관계에 불투명한 요인을 적지 않게 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일으키고 있다.
교과서문제에 대해 중공 측은『이미 해결 된 것』 (등소평·조자양 발언)임을 확언함으로써「스즈끼」수상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러나「스즈끼」-등소평 회담에서 등은『일본이 군국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군국주의로 몰고 가려는 일부 인사가 있다』고 노골적으로 일본을 힐난했고 호요방도『일본이 극히 소수의 단견에 좌우되어 군국주의로 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중공지도층의 발언은 대소전략상 일본의 군비증강을 환영하는 자세를 보여온 중공이 태도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주목될 뿐 아니라 일본은 미-일 방위분담의 차원에서 방위력을 계속 증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만큼 앞으로 양국관계에 적지않은 마찰의 소지를 남겨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스즈끼」수상의 중공방문에서 양측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는 것은 경제협력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26일의「스즈끼」-조자양 1차 회담에서 교과서문제가 45분을 차지한데 비해 경제협력문제는 75분을 차지, 양국 간 경협문제의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자리에서 조자양은 중공이 3년 간의 경제조정을 거쳐 경제개발계획을 다시 추진할 여건을 갖추었다고 밝히고 일본의 적극적인 경제기술협력을 요망했다.
중공이 제시한 중점개발사업은▲에너지▲교통운수▲비철금속을 포함한 자원개발▲중단했던 대형프로젝트의 부활 등이다.
「스즈끼」수상은「중공의 자원과 일본의 기술·경제력의 상호보완」이라는 일본의 대중공경제정책을 강조하면서 중공의 경제건설에 적극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방문중에 일본은 6백50억엔 규모의 82년도 대 중공 엔 차관계약에 서명하는 한편 83년으로 끝나는 엔 차관 공여기간을 연장, 83년이후도 계속 중공에 대해 정부차관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체결된 6백50억 엔의 정부차관 중에는 보산제철·대경석유화학 콤비나트건설을 위한 2백억 엔의 상품차관이 포함돼 있어 주목을 끌고있다.
일본은 이밖에 발해만 유전개발사업에 필요한 3억9천만 달러 규모의 추가자금을 지원하고 황해 남해의 석유개발, 삼강평원 농업개발 사업에도 일본이 참여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다.
중단됐던 대형 프로젝트의 부활에도 일본 민간기업이 다시 참여할 것임을 밝혔다.
이 같은 경제면에서의 협력약속은 중공이 교과서문제로 일본의 덜미를 잡고 이를 이용, 경제면에서 실속을 차리겠다는 속셈인데 비해 일본은 이를 역이용, 중공대륙에 대한 경제적 기반을 강화해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중 관계는 중·소 접근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데다 중공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불안과 우려를 표시하기 시작함으로써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으며「스즈끼」수상은 변화하는 동북아정세에 확고한 일본의 입장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소극적 외교, 저자세외교의 인상을 남겨놓았다고 할 수 있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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