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대기오염이 태평양 생태계까지 교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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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지역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경제발전이 드넓은 태평양의 수질과 생태계까지 뒤흔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례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지질시대가 열렸다는 이른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이기택 교수 연구팀이 화석연료 사용과 산업활동 등 인간활동으로 만들어진 질소(N) 오염물질이 대기를 통해 북태평양 전 해역에 유입되고 있음을 규명해냈다고 28일 밝혔다. 이 연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미국 하와이주립대,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함께 진행했고, 28일자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동해와 북태평양 바닷물 시료에서 측정한 질소 농도, 대기를 통해 배출되는 질소의 양, 전(全)대양 모델 분석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북태평양의 질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함을 밝혀냈다. 특히 그 주원인이 대기를 통한 질소 유입임을 입증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하와이 인근 해역에서 깊은 수심까지 층별로 채취한 시료에서 염화불화탄소(CFC)-12의 농도와 질소의 농도를 측정한 자료가 이번 연구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CFC-12는 195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지속적으로 사용량이 늘어났는데, 물속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류를 따라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 바닷물 속에서 CFC-12의 농도를 안다면, 그 바닷물이 언제 표층에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시기별로 북태평양 표층 해수의 질소 농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됐고, 1970년대 이후 질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 사실도 알아냈다. 연구팀은 식물플랑크톤 중에서 대기중의 질소(N2)를 고정하는 시아노박테리아 탓일 가능성도 살펴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와 관련 "질소 성분이 해양에 지속적으로 들어가면 영양염 균형이 파괴돼 식물플랑크톤의 종(種) 조성까지도 바뀔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물 성장에 가장 적합하다고 알려진 질소와 인 비율(레드필드 비율)은 16:1인데, 과거 동해는 그 값이 13:1로 질소가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15:1로 바뀌었고, 조만간 16:1 이상으로 역전이 되면서 인이 부족한 상태가 될 전망이다. 그에 따라 다른 식물플랑크톤이 우점을 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동북아의 인구증가와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대기오염이 심각한 해양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질소 배출량을 설정하는 등 새로운 환경정책을 수립하는 과학적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국립환경과학원을 중심으로 질소의 배출과 이동 등을 조사하는 이른바 '질소 수지(收支)'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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