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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이 대입이냐” … 가·나·다군 모집에 엄마들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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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치원을 가·나·다군으로 나눠 세 차례 지원하게 한다더니 집 근처 유치원이 모두 가군이에요. 지원 기회만 줄어들게 생겼습니다. 이런 졸속정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습니까.”(서울 중랑구 학부모 박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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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유치원 원서 접수기간을 코앞에 두고 지원제도를 갑자기 바꿔 ‘유치원 지원 대란’이 벌어졌다. 지난 10일 조 교육감은 유치원 모집을 가·나·다군별 한 차례씩 지원하게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12월 초 시작되는 내년도 모집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다. 인기 유치원에 지원이 몰려 중복 합격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각 교육지원청이 26일까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집군 배정을 신청한 553개 유치원 중 344곳(62%)이 가군에 배정됐다. 나군은 162곳, 다군은 47곳에 그쳤다. 가군 쏠림으로 지원 기회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336곳은 군도 정하지 않았다. 네 살배기 딸을 둔 이선정(35·여·서울 동작구)씨는 “지원하려던 병설유치원이 모두 가군이라 난감해졌다”며 “안 그래도 들어가기 어려운데 탁상행정 때문에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중복 지원을 가려 낼 수단도 갖추지 않았다. 이씨는 “한 곳만 지원한 부모만 바보가 될 것”이라며 “교육청에 항의전화를 했더니 ‘솔직히 양심에 맡길 뿐’이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육아정보 인터넷사이트엔 “유치원이 대입이냐” “공무원시험보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시교육청은 27일 가·나·다군을 비교적 고르게 재배정하고 지원 기회를 네 차례로 늘렸다. 공립유치원은 추첨일이 12월 10일(가군)·12일(나군)로 변화가 없다. 사립유치원은 12월 4일(가군)·5일(나군)·10일(다군)로 날짜를 변경했다. 하지만 중복 지원을 적발할 수단은 여전히 마련하지 않아 학부모들의 불만을 의식한 교육청이 사실상 중복 지원을 허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학부모의 혼란 가능성이 남은 셈이다. 조 교육감은 현장에 미칠 파장을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교육감이 세심한 고려 없이 정책을 추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특히 맞벌이 가정을 곤혹스럽게 하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출산율 높이기와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해 정부가 유인책을 제시하는 것과 딴판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 24일 하루 5시간인 유치원 수업시간을 내년부터 3~5시간으로 사실상 축소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기관 생활을 오래하는 게 아이들의 체력·발달 단계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수업 부담이 크다는 유치원 교사들의 요구를 일차적으로 수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수업시간 단축은 전교조·교총 등 교원단체가 요구해 온 사안이다.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이모(32·여·서울 종로구)씨는 “지금도 퇴근시간까지 공백이 길어 10만원짜리 유치원 특강을 듣게 하는데 수업시간이 줄어들면 사교육비만 더 든다”며 “훨씬 오래 근무하는 어린이집 교사와의 형평에도 안 맞는다”고 말했다. 김모(33·여)씨는 “조 교육감이 이상적인 명분만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현실을 정말 모른다 싶었다”며 “진보라면 일하는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고 돌봄서비스를 강화해야 하는데 직장맘을 오히려 울리고 있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맞벌이대책으로 “국공립유치원의 종일돌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서울 국공립유치원 중 59%는 만 3세 대상 종일돌봄반을 개설하지 않았다.

김성탁·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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