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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 인권 보호는 '합격' 인력 공급은 '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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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지난해 8월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근로자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한 실정이다. [중앙포토]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시행 1년을 맞았다. 노동연구원 평가 결과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력 도입에 시간이 많이 걸려 기업들이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한편으론 불법체류자가 줄어들지 않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 도입 속도 너무 늦어=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모두 1만4835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 도입 숫자가 지난해보다 다소 늘었지만 지난해 3만3500명, 올해 3만9000명을 도입한다는 정부의 계획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기다리는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으로 골탕을 먹는 경우가 많다.

경기 반월공단 P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외국 인력의 고용을 신청한 뒤 근로자들이 도착하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다"며 "원래 초순께 온다고 했다가 말일로 바뀌어 손실이 컸다"고 말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 인력 도입에 소요되는 기간이 올 1월 평균 58일에서 3월 67일, 5월 66일, 6월 77일 등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금업체인 N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지난 4월 인도네시아 근로자 5명을 신청했지만 지난달에야 도착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20명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 12명이 일하고 있다"며 "신청부터 근로자가 도착할 때까지 기간을 한 달 정도로 단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줄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법무부에 따르면 6월 말 국내 외국 인력 규모는 총 35만5000명이며 이 중 불법체류자는 19만7000명으로 55.5%에 이르고 있다. 강화되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올 1월 18만7000명에서 1만 명가량 더 늘었다.

2003년 합법화 조치로 임시 연장됐던 근로자의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불법체류자 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 종합적인 외국 인력 정책 필요=노동연구원 유길상 부원장은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더라도 전문기술 외국 인력의 도입에 중점을 두고 저숙련 외국 인력의 도입은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 전문기술 외국 인력 유치와 외국 국적 동포의 우선 활용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송출국 정부가 외국 인력을 빨리 공급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달부터 시행되는 한국어 검정시험은 외국인 근로자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도입 속도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한국어 검정시험을 위해 한국어학교에 등록하는 데 인도네시아의 경우 40만원 정도가 든다"며 "2주 배워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스러운데다 월수입 7만~8만원 정도인 그들에겐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또 송출국 정부가 외국 인력 선발과 송출 과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필요도 있다.

송출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하거나 송출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면 해당국과 양해각서(MOU)를 갱신할 때 도입 인력 규모를 줄이는 등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 인권 측면에서는 긍정적=노동연구원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는 중소기업 300곳을 조사해 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허가제의 시행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이 향상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6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8.7%는 '보통이다'고 대답, 고용허가제가 전반적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응답 업체의 60.7%가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무단이탈 및 불법 체류가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아직 시행 초기이긴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줄이려는 고용허가제의 도입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우려했던 비용 측면에서도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을 비교했을 때 응답자의 56%가, 불법체류자와 비교했을 때는 50%가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고용허가제의 비용이 적게 든다고 응답한 비율도 산업연수생과 비교했을 때 8.3%, 불법 취업자 대비 19.4%로 나타났다.

정철근 기자, 박형아 인턴기자

법무부 "불법체류자 단속 어려움 많아"
연말까지 합동단속 강화
일부 단체 "인권은 존중을"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다가 우리 직원들의 다리.손가락.코뼈가 부러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최만교 조사1과장은 "지난달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다친 사고가 16건이나 된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 과장은 "불법체류자들이 도망가면서 싸움은 기본이고 재래식 화장실에 빠지거나 심장발작 시늉을 하는 등 단속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털어놨다.

불법체류자가 줄지 않자 법무부와 검찰의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단속 실적은 2만7400명. 올 초 월 3000명대에서 3월부터는 4000명대를 넘고 있다.

이 같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2003년 체류기한을 임시 연장해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잘 나가지 않는 바람에 불법체류자는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자진출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6만9700명으로 대상자의 50%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8월 말로 끝낼 예정이던 검찰과의 합동단속을 올 연말까지 연장할 방침이다.

단속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충돌이 벌어지면서 인권침해라는 비판도 있지만 단속 담당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조사1과 이승현 서기보는 "불법체류자들은 도망갔다 잡혀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에 무조건 죽기 살기로 도망친다"며 "순순히 단속에 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장 사정상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일부 인권단체들은 무리한 단속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며 법무부를 비난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협의회 우삼열 사무국장은 "단속반들은 신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수갑부터 채우고 싹쓸이 단속을 한다"며 "이것은 엄청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단속반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조건 연행하면서 합법체류자까지 잡아 가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중에는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올 때 쓴 송출비용을 아직 벌지 못해 불법을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6000달러(600여만원)를 들여 4년 전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출신의 티푸(31)는 "산재와 체불 등으로 아직 송출비로 진 빚도 갚지 못했다"며 "도망을 다니더라도 한 2년 정도 더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팔 출신의 라주(33)는 "단속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지난달에는 30만원밖에 못 벌었다"며 "비행기표 값만 벌면 바로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정철근 기자, 박형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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