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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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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단단히 뿔 났다. 고질적인 정부 규제 때문이다. ‘암덩어리’ ‘원수’ 등의 표현을 쓰더니 이번엔 “단두대에 올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비장함을 넘어 썸뜩함이 느껴진다. 사실상 공무원을 향한 경고다. 규제를 쥐고 흔드는 게 바로 공무원이니 말이다.

 각종 규제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문제 인식은 백번 옳다. 규제가 혁파돼야 투자와 창업이 활발해지고 경제의 체질 개선도 가능해진다. 세계 각국이 규제 개혁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공무원을 지휘·통솔하는 자리에 있지 않은가. 벌써 집권 2년인데 계속 같은 상황이고 보면 뭔가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있다. 엄마는 공부 좀 잘하라고 매일 핀잔을 준다. 옆집 우등생을 본받으라고 한다. 가끔 점수가 좋아도 칭찬엔 인색하다. 학생은 잔뜩 주눅이 들고 반발심까지 생긴다. 그러다 공부는 하는둥 마는둥 게임에 빠진다. 화가 난 엄마는 용돈 깎고 학원도 안 보내겠다고 경고한다. 학생은 아무 말 못하지만 속으론 “맘대로 하세요” 한다.’

 규제에 안주하며 경제를 좀먹는 공무원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채찍으로만 다스릴 대상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규제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도 결국 대통령이 손발로 부릴 것은 공직사회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로 비유된다. 부려 먹기 나름이란 얘기다. 자기들도 그렇다고 인정한다. 한국이 이만큼 성장하기까진 공직자들의 역할도 컸다.

 아무튼 지금 공직사회에 대통령의 ‘영(令)’이 잘 서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잘 아는 공직자들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라고 직접 물어봤다. ‘인사’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제때 이뤄지는 인사가 없다. 장관의 재가를 받은 인사안을 청와대에 제출한 지 몇 달째 회신이 없는 게 비일비재하다. 새 상관이 와야 일을 할 텐데, 조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오면 다행이련만, 이상한 결과가 많다.”

 정부 산하 기관이나 단체의 인사는 더하다. 질질 끌다가 결국 내려오는 게 대선캠프 출신 ‘정피아’(정치권 마피아)인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 산하 기관장과 감사에서 사외이사까지 정피아 독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관피아’(관료 마피아)가 떠난 자리는 물론 그 이상을 정피아가 속속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안에 인사전횡을 하며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게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그런 사람들을 곁에 앉힌 책임을 피할 순 없다.

 공직사회를 통솔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인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규제 개혁이 안 되고 창조경제가 작동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자주 말한다. 하지만 정작 답답한 것은 국민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국내 기업들의 성장판이 막힌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선 각계의 고통분담이 필요하건만 서로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니 될 일도 안 된다. 경제위기 극복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인 양 외면한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정신’은 종적을 감췄다. 그렇게 된 데는 대통령 측근들의 책임이 크다. 집권의 목적이 국가 경영이었는지, 잇속 챙기기였는지 헷갈릴 정도다.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인사로 말해 줘야 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총리와 청와대 요직부터 국민의 신망을 받을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지역을 불문한 대탕평 인사도 좋고, 과거 정적이었던 사람들과의 연정 방식도 좋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데 왜 나만 희생하라고 하느냐”는 국민 생각을 불식시킬 인물이면 된다. 그렇게 리더십 있는 사람들이 정부를 이끌면 대통령의 리더십도 바로 서고 국민은 다시 마음을 열 것이다. 국민이 의기 투합해 경제를 살려보자고 하면 국회도 움직이지 않을 재간이 없다. 구조개혁 관련 법안들을 속속 통과시키게 될 것이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