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장애아 23명에게 용기 준 국악 선생님 감사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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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사물놀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네 살 때부터 치료실을 다니며 인지치료·언어치료·음악치료를 받았고, 저는 아이와 함께 바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작은아이의 국악발표회를 보러 갔는데, 가만히 앉아 관람하지 못하고 부산스러운 민석이를 보면서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말들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얼마나 서럽고 속이 상하던지 … 그 아픔을 되새기며 고민하다가 장애를 지녔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들과 다르게 살게 하는 건 아이에게도, 내게도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력도 안 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 작은 아이의 국악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어렵게 입을 열어 우리 아이에게 장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망설임 없이 지도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민석이와 친구 두 명이 함께 장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더디게 배우는 아이들은 전래동요와 놀이를 장구에 접목시켰습니다. 아주 느린 걸음이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가고 있을 무렵, 부모회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엄마 몇 명이 모인 가운데 작은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가슴을 울립니다. 공연을 응원하러 왔던 친구들도 장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뒤 장애인 부모회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들은 사물놀이를 통해 장애를 이기고 당당히 걸어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발달장애인 전통예술단 ‘얼쑤’를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얼쑤’ 단원들은 초등학생부터 성인들까지 23명이 각각의 색깔과 소리를 품어 심금을 울리는 멋진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소리에 예민해 귀를 막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꽹과리의 울림과 징소리를 이겨내는 인내를 배우기도 하고, 공연과 좋아하는 현장학습이 겹쳐지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연을 선택하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노력 덕분에 이제 ‘얼쑤’는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여러 번 받기도 하고 많은 곳에 초청공연을 나가는 멋진 팀이 되었습니다.

 ‘얼쑤’에는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세 분 계십니다. 엄마 역할을 하시는 김선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며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도 낯빛 한 번 붉히지 않고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게 잘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엄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 주는 든든한 주춧돌이십니다. 조종현 선생님은 아이들의 친구임을 자청하며 기틀을 마련하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시는 아버지 역할을 하십니다. 장규식 선생님은 늘 넉넉한 품과 미소로 아이들을 품어주시는 형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아이들 뒤에서 지속적인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공연을 위해 악기를 나르고, 운전도 하고, 공연복을 갈아입히고, 대기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간식까지 챙겨주시는 든든한 매니저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신 ‘얼쑤’ 어머님들! 어머님들의 노력 덕분에 아이들은 이제 서로를 챙겨주고 의지하며 연습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얼쑤’의 단원이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갈 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고자 합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얼쑤 학부모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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