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긴축" 바탕 첫 적자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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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 예산안은 여러가지 점에서 많은 이변을 보이고있다.
경기침체와 수입둔화로 관세와 방위세가 올해보다 적게 걷히는 등 세수전망이 불투명하여 예산증가율도 지난 73년이후 최저수준인 9·8%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초긴축 예산편성에도 불구하고 5천5백억원의 국채를 발행,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최초의 적자예산 기록을 세웠다.
지난 63년과 73년의 예산이 전년비 감소한 적이 있는데 이는 통화개혁과 8·3조치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투융자사업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번 예산의 경우 4년간 연속 불황속을 헤매고있는 경기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기에는 미진한 점이 많다는 판단에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맸다.
올해 본예산을 늘리지 않는 경정예산만을 편성하고 내년에도 추경편성을 하지 않는 가장 모범적인 긴축예산을 짰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내년 예산안의 특징은 방위비와 경제개발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 데 있다.
경제개발부문중 투자효율성이 낮거나 명분없는 사업은 거의 제외되었다.
상공지원 및 에너지부문에 대한 지출은 올해보다 13·8%나 축소되었다. 농수산 개발부문만 보더라도 농외소득 증대나 농업용수사업 등을 제외한 나머지부문이 듬뿍 잘려나갔다.
소득세·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를 확대시키면서 경기에 직결되는 공공투자사업은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재원을 마련, 계속 공사를 할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각 지역 댐공사와 치수사업·도로확장 및 포장공사 등이 그 예다.
이례적으로 연초부터 예산개혁작업을 벌여 올해 세출에서 2천억원을 깍고 내년도 사업별 효율성과 단급을 가려 교통정리를 하는 등 기대이상의 효과를 냈다. 그러나 일괄공사를 이유로 지하철공사 등에 큰 몫을 할당, 재원배분 방향이 당초 약속과는 다소 어긋난 부분도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소기업지원을 위한 신용보증기금 출연·진흥기금 조성에 노력했으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비중은 올해와 같은 1·5%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높은 금리의 외자를 들여와 이를 연불자금으로 지원하고 이에 대한 금리차를 계속 재정에서 메워줌으로써 국민의 세금으로 장사밑천을 대주는 꼴이 되었다.
지방교부금과 교육교부금 비율이 법정화되면서 재정의 경직도는 70·9%로 더욱 심화되었으며 경기조절과 같은 재정기능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지방교부금을 법정률만큼 큰 몫으로 내준 것은 선거공약사업과 관련이 없지 않으나 그 시기가 과연 적절한 것일지는 재검토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경직성경비의 증가 때문에 희생되는 쪽은 역시 사회개발부문이다. 주택이나 생활환경지출이 25·8%나 삭감된 것은 국가예산의 우선순위를 사회개발로 돌린다는 5차계획의 기본방향과 크게 어긋나고 있다.
특히 세수부족을 이유로 국민편익시설에 관한 투자를 줄였으며 영세민 생활보호와 88올림픽에 대비한 스포츠시설 확충·가족계획사업으로 사회개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나라의 사회개발비가 일반회계 총세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인데 비해 미국은 47·3%, 서독은 69·1%나 된다.
일반행정비는 예년에 없는 구조전환을 시도했다. 각부처 예산요구액을 무시하고 단위관서별 비용을 표준화했으며 영수증 없이 쓸수 있는 정보비를 폐지(수사·정보비등 제외)했다. 용역비나 해외여비는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경찰증원과 하급직 공무원의 처우개선으로 일반행정예산 증가율은 경제 및 사회개발부문보다 훨씬 높은 9·8%나 된다.
공무원봉급은 일률적으로 6% 올렸으나 수당과 호봉을 합치면 7·5% 오른 셈이다. 이 인상률은 모든 국영기업체의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되고 민간기업체에도 적극 권장될 움직임이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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