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들이 본 꼴불견 골퍼 백태] "슬쩍 껴안고 … 클럽 내던지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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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캐디(골프장 경기 도우미) 수난 시대다. 지난 3일 전남 화순의 C골프장에서 라운드하던 현직 은행장이 캐디의 다리를 걷어찼고, 같은 날 방영된 모 방송사의 드라마에선 캐디에게 노골적인 수작을 거는 장면이 방영돼 반발을 샀다.

현직 캐디들은 이에 대해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 골프장 도우미를 노리갯감이나 성희롱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권 A골프장에서 12년째 캐디로 일하고 있는 손숙희씨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일부 골퍼의 성희롱은 참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모멸감을 느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9년차인 김혜숙씨도 "반말을 일삼으며 '잘되면 내 덕, 잘못되면 캐디 탓'을 하는 골퍼들을 만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이 말하는 꼴불견 골퍼들의 유형이다.

◆ 치한형=은근슬쩍 다가와 어깨를 감싼다. 때로는 카트를 타고 가다 운전하고 있는 캐디의 허벅지를 더듬기도 한다. 심지어는 동반자의 눈을 피해 등 뒤에서 껴안고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는 골퍼도 있다. "뭐하시는 거예요"하고 항의하면 "아가야, 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네가 신경과민 아니냐"고 시치미를 뗀다.

◆ 몸매 감상형="앞에서 걸어가 봐." 라운드 도중 이렇게 말한 뒤 캐디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유형이다. 그러면서 동반자와 함께 킥킥 웃으며 수군댄다. "몸매 죽이지. 허리도 잘 빠졌고…."

◆ 과시형=라운드 도중 갑자기 지갑을 열어보인다. 그러면서 은밀한 미끼를 던진다. "한 달에 200만원이면 돼? " "오피스텔 하나 얻어줄게, 일주일에 한두 번만 만나자."

◆ 오줌싸개형=티잉 그라운드건, 페어웨이건, 그린 주변이건 가리지 않고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서서 수시로 지퍼를 내린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볼일을 본다. "어, 시원하다." 이런 골퍼들에겐 기저귀라도 채워주고 싶다.

◆ 작업형=골프는 뒷전이고 작업이 우선이다.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저녁 때 한번 만나자고. 다른 골프장 캐디는 19번 홀에서 만나자고 하던데…." 어떤 골퍼들은 캐디백 안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넣어주지 않으면 "경기과에 '캐디가 불친절하다'고 일러바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 깡패형=샷이 빗나갈 때마다 클럽을 집어던진다. 그린에서 퍼트가 빗나가면 "네가 브레이크를 잘못 읽어서 그렇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현직 캐디들은 "직접 그린 보수를 하거나, 벙커를 정리하는 등 매너 좋은 골퍼를 만날 때면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언니야'라는 호칭보다 이름을 불러주고, 캐디들을 라운드의 동반자로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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