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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너무 어려운 그 곡, 20년 만에 연주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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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피아니스트 백건우(68·사진)는 1994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한 무대에서 연주했다. 한 작곡가의 곡으로만 나흘 열린 ‘브람스 페스티벌’이었다.

 25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브람스 두 곡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게 아주 좋은 생각 같진 않다”고 말했다. “두 작품 모두 음악이 진하고 풍부하다. 청중에게는 지나치게 압도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백건우는 2011년 브람스 협주곡 1번 음반을 내면서도 2번은 빼놨다. 하지만 다음 달 2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브람스 2번을 연주한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 도이치캄머필하모닉과 협연이다. 백건우가 한국에서 브람스 2번을 협연하는 것은 꼭 20년 만이다.

 - 브람스 2번은 피아니스트들이 자주 고르는 곡목이다. 왜 이 곡을 아껴뒀나.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브람스는 장식적이지도, 색채가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연주하면 할수록 진국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게 나온다는 뜻이다. 40년쯤 전에 포르투갈에서 브람스 2번을 처음 연주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선뜻 나서게 되는 작품은 아니다.”

 - 젊은 시절엔 체력과 집중력이 있으니 덜 힘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곡의 이해에는 특별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브람스 2번 음반을 들어보면 성공적 연주가 그렇게 많지 않다. 서킨·길렐스·리히터 정도다. 여타 훌륭한 피아니스트도 이 곡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 브람스의 어떤 점을 이해하기 힘든가.

 “베토벤은 일직선으로 나간다. 작품을 보면 초기부터 후기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브람스 피아노 작품은 초기에 혁신적으로 앞섰다가 중간에 교향곡·노래에 집중했고, 후기에는 아주 고전적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해하고 나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 생각하게 된다. 특히 협주곡 2번은 구성이 완벽하다.”

 - 어렵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브람스를 많이 좋아한다.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이 그대로 음악에 나온다. 그는 내성적이면서 따뜻했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스승 슈만의 가정을 비롯해 친척, 동네 사람까지 도와주고 모두 챙겼다. 간접적 ‘가정’을 돌본 가정적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이중적 면이 브람스의 매력이다. 그는 어둡지만 동시에 밝다. 그리고 이를 이해해야 브람스를 연주할 수 있다.”

 - 연주를 앞두고 연구를 많이 하는데.

 “물론 작곡가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려 애쓴다. 하지만 연주자는 학자와 다르다. 뭐니뭐니 해도 답은 악보 속에 있으니까. 여기에서 답을 찾는다. 그게 연주자의 몫이다.”

 지난 9월 뉴욕 UN본부에서 반기문 총장을 위한 연주회를 열었던 백건우는 이번 공연을 마치고 내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모리스 라벨 탄생 140주년 기념 음악회에 출연한다. 도이치캄머필하모닉은 다음 달 4일 협연자를 바꿔 바이올리니스트·첼리스트인 크리스티안·탄야 테츨라프 남매와 함께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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