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노화] 19. 美 국립노화연구소의 화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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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년 이후 적당한 음주는 정신 기능의 저하를 막는데 유익하다'

'악수할 때 손을 잡는 힘이 강한 사람이 나이를 먹은 후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한다.'

'담배를 오래 피우면 폐기능이 최고 80%까지 떨어진다'

'기억력은 65세가 지나면 빠르게 감퇴한다'

'30세 때 성격이 평생 간다'

'70대 이후엔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청력은 80대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다'

세계의 노화 연구기관 가운데 돈을 가장 많이 쓰는(올해 예산 9억7천만달러)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가 지금까지 발표한 연구결과들이다. 중앙일보는 이 연구소를 찾아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 중 가장 요긴하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봤다.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최상의 장수약이다."

미국 노화 연구의 총 본산인 NIA의 소박한 결론이다.

NIA는 또 베타 카로틴.비타민C와 E 등 항산화(抗酸化)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과 야채를 하루 다섯가지 이상 먹으면 몸 속의 유해 산소를 제거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본다. 비타민은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게 좋다는 것이 NIA의 공식 입장이다.

NIA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장수 관련 약이나 호르몬요법 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인다. 항산화 효소인 SOD를 알약으로 복용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또 나이든 사람이 성장호르몬.DHEA.여성호르몬 등 호르몬을 보충받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한다.

1974년에 설립된 NIA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25개 산하 연구기관의 하나로 워싱턴 DC 외곽 베세즈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직속 연구기관인 노화연구센터(GRC)는 워싱턴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볼티모어시 존스홉킨스 의대 베이뷰 메디컬센터 내에 있다.

이곳에서 포스트 닥터로 5년째 연구중인 이철순 박사는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만한 NIA의 연구는 원숭이를 이용한 절식(節食) 실험, 볼티모어 프로젝트(BLSA), 알츠하이머병 예방 연구 등"이라고 설명했다.

◆절식이 노화를 막는다="이건 아직 공식 발표되기 전 자료인데…." NIA 마크 매트슨 박사가 이렇게 운을 떼며 제시한 원숭이 실험 결과는 절식의 건강효과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NIA 연구팀이 16년 전(87년) 붉은털 원숭이와 다람쥐 원숭이 1백50마리(열량을 30% 덜 섭취하도록 한 75마리와 마음껏 먹게 한 75마리 대상)를 대상으로 절식 실험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식사를 절제시킨 그룹에선 4마리, 마음껏 먹은 그룹에선 17마리가 죽었다.

심장병.암.당뇨병 등 만성 질환에 걸린 원숭이의 수도 절식 그룹에선 5마리에 불과한 데 비해 마음껏 먹은 그룹은 26마리나 됐다.

NIA 도널드 잉그램 박사는 "절식한 쥐는 실컷 먹은 쥐보다 평균 체중이 20% 적었으나 활동성에는 차이가 없었다"고 말한다. NIA가 내린 현재까지의 결론은 절식하면 수명이 30% 이상 늘어난다는 것이다.

절식하면 혈압이 낮아지고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고밀도지단백(HDL)수치가 높아진다. 연구소의 조지 로스 박사는 "절식한 사람은 적게 얻은 열량을 더 효율적으로 쓴다"며 "그러나 정상 체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열량 섭취를 더 줄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고 강조한다.

◆볼티모어 프로젝트=노화의 비밀을 캐기 위해 58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로 1천2백여명의 지원자가 참여 중이다. 지원자들은 2년마다 볼티모어에 와서 혈액.호르몬.인성 검사 등 1백가지 이상의 검사를 받는다.

NIA 데이비드 슐레징거 박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두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며 "하나는 노화와 질병은 별개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노화의 시간표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쇠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질병 등 건강문제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심지어 같은 사람의 장기(臟器)도 제각각 다른 노화 속도를 보인다. 이는 각자의 유전자.생활습관.질병 등이 노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사람이 오래 사는가'가 밝혀졌다. 손발이 차고(체온이 낮고), 인슐린 분비량이 적으며, DHEA 황산염 분비량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이 결과는 '절식이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동물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먹이를 줄인 쥐에서 예외없이 이 세가지 특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도 절식하면 이런 체질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예방=인간이 오래 살면 알츠하이머병은 불가피한 것인가. 매트슨 박사는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라며 "그러나 부모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해서 그 병을 대물림하는 것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NIA가 연구비를 댄 한 연구(노인 8백여명 대상)에선 식품을 통해 비타민 E를 하루 평균 11. 4 IU 섭취한 사람들이 6. 2 IU를 먹은 사람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67%나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식품이 아닌 비타민제를 통해 비타민 E를 복용한 경우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이 낮아지지 않았다.

또 NIA 자체 동물 실험에서 녹색잎 채소.감귤류.통밀빵.마른 콩 등에 풍부한 엽산(비타민의 일종)을 충분히 섭취하면 알츠하이머병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요즘 NIA는 아스피린.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제.비타민 E 등 항산화제와 엽산.비타민 B6.B12 혼합제제.은행잎 제제 등이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효능이 있는가를 집중 추적하고 있다.

볼티모어=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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