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사귀도록 가르쳐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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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끔 저녁식사 후 꼬마들을 따라 석촌 호수가로 산책을 나간다. 대도시에 살면서 우리 마을에 이런 자연호수가 있다는 사실은 진실로 고마운일이요, 나가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와 걷고 뛰고 더러는 벤치에 앉아 얘기도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호수가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남녀 청소년들이 떼지어서 휘파람을 불고 서로 농을 하느라고 제 친구들을 떼밀고 때로는 넘어뜨리기도 하며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게된다.
저희들 딴엔 서로가 관심을 보이고 싶고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뜻이 그렇게 밖에는 표현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여고에 다닐 적에도 오가는 학교 길에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그런 것을 했지.
『엄마, 저 오빠들이 왜 저래?』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의 말이다. 내 꼬마들이 저 나이쯤 되어도 저꼴로 이성을 대하면 어쩌지.
문득문득 센트럴파크·하이드파크·레만호수가에서 소년소녀들이 어울려 배드민턴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시합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내눈엔 하 그리도 아름다와 마치 한 폭 그림같던 장면들이….
이성! 이성이 뭣이 이상해서 저리도 어색하고 무례해야 하는가. 이성관계는 인간관계가 아닌가. 자연스럽고 세련되어야 하는 것이 예절바른 태도가 아닌가.
딸애가 세 살 적에 자기는 왜 고추가 없느냐고 사서 달아달라고 때를 썼다. 나는 여는 여자이고 여자는 고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빠의 것과 모양이 다를 뿐이라고 타이르고 설명했다. 성교육은 이때부터 가정에서 시작되어야한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여고생이었던 막내 동생이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려다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 달려나온 일이 있다. 그 애는 그때 처음으로 여아와 다른 남아의 신체구조를 알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놀란 것이다.
성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어찌 여고생이 되도록 남자의 신체구조를 몰라야 한단 말인가. 인간으로서 남성의 신체구조도 모를 진대, 어찌 그 심리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흔이 넘은 부인들 중에도 남자들과 자리를 같이하면 유난히 거북스러워하고 몸을 비틀고 어색한 표정을 짓는 이를 본다. 그래서 간혹 상대방 남자로 하여금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국민학교 이후 줄곧 여학생끼리만 배우는 학교를 다닌 사람 중에 특히 이런 분들이 많다. 인생을 그 나이만큼 살고 나서 그것도 남성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4O년 이상 살아왔으면서도 그렇듯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성! 이성은 우선 이성으로 보기 전에 먼저 하나의 사람으로 봐야한다. 왜 사람을 보면서 먼저 이성으로 느껴지게 되는가. 하기야 남녀공학을 다녔고 20년 가까이 남성들 속에서 일해온 나도 여성끼리 있을 때가 더 편하게 느껴지지만….
이성에 대해 아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그래서 선조들은 서당에서 논어를 배운 다음 보정이란 생리철학을 가르쳐 이른바 성교육을 했다.
성을 금기시한 조선시대에도 이성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는데, 그 지혜가 어째서 도중에 사라지고 말았을까.
성교육은 유치원부터가 아니라 성차에 눈뜨는 세 살 적부터 시작되어야 하되 연령수준에 따라 내용 수준도 달라야한다.
방법도 가정에서 자연스런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학교에서도 남녀공학의 자연스런 상황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고 예의바른 인간관계를 맺어 가는 기술을 배우도록,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성교육이 되었으면 한다.<유안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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