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회 배역도 학생 스스로가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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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의 국민학교에서는 대개 학년말 방학 전날에 학예회를 갖는다.학생수가 적은 학교에서는 전교생이같이 하지만 큰 학교에서는 반별로한다. 이 행사는 두가지 특색이 있다. 하나는 진행이 아주 어슬프다는점이고 다른 하나는 반아동들이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어설픈 이유는 연습에 소요되는 시간을 학업에 지장이 안될 정도로 최소한으로 줄이고 경비를 들이지 않기위해 무대장치나 의상을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학예회를 위해 학부모가 새옷을 산다든가, 기부금을 대는 일은 전혀없다.
모든 학생을 참여시키는 것은 한 반학생이 10여명, 많아야 20명 정도니까 가능하다. 물론 학예회의 목적을 「우수한 연극」을 보여 주는톄 둔다면 전교에서 자질있는 아이들만 모아서 곰연을 하게하고 나머지는 관객으로 내버려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학교에서는 학예회의 목적을 모든 아동에 의한, 모든 학부모를 위한 가족적 행사라는데 두고있다.
기자는 국민학교 6학년생들이 공연하는「조지·오월」의 『동물농장』을 구경한 적이있다. 배경 그림 하나만 덩그렇게 놓아둔 외에 아무런 무대장치가 없는 교실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그린 동물 가면을 쓰고 었었다.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입장과 퇴장때 저희들끼리 키들키들 웃기도 했지만 대사만은 아주 똑똑히 잘 외었다.
이 연극에는 주역이라고 할만한 역이 돼지의 지도자「나폴레옹」과 나레이터 둘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물 소리나 내며 따라 다니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역을 놓고 경쟁이 대단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애게 배역을 어떻게 정했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학생 스스로가 자기가 원하는 역을 지정하면 대개 그렇게 했으며 한역에 두사람이상 경쟁자가 생기면 심지를 뽑았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배역을 뽑기 때매문에 여느 학예회에서는 「신데렐라」 역에 혹인아동이 나선적도 있었다. 예쁜 아이를 「신데렐라」로 〕뽑는다든가, 못난 아이에게 못난 언니역을 시킨다는 식의 공리적 배려를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의도가 적어도 국민학교 학예회서는 명백하다.
영국사회를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겅쟁이다. 경쟁은 물론 생산성 제고 유익한 요소지만 협조관계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에서는 악영향을추는 요소이기도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국민학교 아동수준에서는 경쟁에 노출되지않게 보호해줌으로써일생을 판가름할 우열의적을 너무 일찍 굳히지 않으려는 배려가 학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엿보인다.
경쟁의식을 억제하려는 배려덕분인지 영국국민학교 담벼락에는 남의학교를 욕하고 자기 학교를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낙서가 없다. 학교마다 다른 교복을 입고, 사립학교와 공립립학교간에 시기심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나 교사는 그런 요소가 갈못된 경쟁심으로 왜곡되는걸 일상생활을 통해 막아 주고 있는 것 같다.
여름 축제 같은 지역행사에 참여하는 학생 악대는 학교 단위가 아니고 지역단위로 조직되어 있다. 각 학교에서 뽑은 소질있는 아이들을 평소에 연습시켰다가 그런 행사때 같은 제복을 입혀 내세운다. 그러니까 학교악대라는 것이 없고 어느 학교악대가 제복이 더 좋다든가, 연주를 더잘한다는 등의 과열 경쟁의식은 없게되는 것이다.
경쟁없는 교욱의 좋은 효과를 수영훈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민학교 수영반의 교육과정은 스피드나 다이빙의 묘기에 역점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이 초보적 수영법을 익히고나면 다음단계는 피로했을때 물속에서 쉬는법을 가르치고 그 다음 단계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훈련으로 넘어간다.
수영교육의 목적이 「모교의 명예를걸머진 우수선수」의 배출이 아니기 떄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자기목숨과 남의목숨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국민학교를 뗘나면서 경쟁은 일평생 계속될것이고 영국사회서도 다른 사회나 마찬가지로 경쟁의 승패는 일생을 좌우 하지만 국민학교때의 헙동적 분위기는 성장후에도 마음의 여유를 주게되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금년 런던마라톤대회에 참가자가 1만5천명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것이었다.
주최측이나 참가자들이 다같이 1등을 내기 위한 행사로 보지 않았고 신문들도 1등과 같은 비중으로 코스를 주파한 노약자, 불구자, 평범한 셀러리맨을 크게 소개했다. 경쟁이란 반드시 타인을 능가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국제경기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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