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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③문화] 24. 확 바뀐 서울의 문화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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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1번지의 터줏대감이던 서울 종로3가 단성사의 옛 모습.

인사동-미술, 동숭동-연극, 충무로-영화, 신수동-출판…. 전통적으로 각 분야 명가의 거리로 군림했던 지명은 근·현대화 40년을 거치며 자본이 흘러가는 길을 좇아 이사에 이사를 거듭했다.
한 집 건너 상업 화랑과 대관 화랑이 몰려 있던 인사동. 실제 행정구역상으로는 관훈동·인사동·낙원동·공평동·견지동에 퍼져 있던 화랑을 편의상 뭉뚱그려 부른 ‘인사동’은 오랫동안 화랑의 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1955년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을 기록한 반도화랑 이후 70년대 현대화랑 등이 자리 잡기 시작한 인사동의 이런 명성은 90년대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좁고 작은 길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화랑이 88년 올림픽 특수를 타면서 커진 미술시장에서 자본을 축적하자 더 넓은 전시공간과 부대사업(레스토랑과 와인바) 터를 찾아 인사동을 떴다. 개인판매보다 거래 규모가 큰 공공미술로 목돈을 쥔 화상은 가깝게는 강북의 사간·평창동과 북촌, 멀리는 강남의 청담동과 신사동에 새로운 미술의 거리를 세웠다.

돈 찾아 삼만리는 미술 동네 얘기만이 아니다. ‘영화의 거리’로 인상 깊었던 충무로에는 이제 영화사가 없다. 한국 영화판이 몸집을 불리던 90년대 이후 대부분 강남 신사·역삼·청담동 언저리로 사무실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영화시장에 삼성·대우 등 대기업 자본이 들어왔다 나가고, 이제는 금융자본이 주도한 투자펀드가 주력을 이루는 한편으로 휴대전화사까지 뛰어드는 판국이니 대규모 자본에 어울리는 영화의 거리가 새로 조성되는 셈이다.

영화사가 자본과 인물이 풍부한 기름진 땅으로 떠난 것처럼 극장도 손님 찾아 몸을 움직였다. 대형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이 강남과 신촌 등지에서 손님떼 몰이에 나섰고, 특급호텔처럼 실내장식을 한 호화판 극장이 차별화 저인망 손님 훑기로 극장 전쟁에 나섰다. ‘한국 영화 1번지’로 자존심을 세웠던 종로의 단성사·피카디리·서울극장도 결국 복합상영관으로 몸 바꾸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배고픈 예술’ 연극마저 돈 구덩이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연극의 고향’이라 불리는 동숭동 대학로가 가벼운 ‘개그콘서트’류 희극에 점령당하는가 하면, 수십억원의 자본을 들인 외국 뮤지컬이 강남지역의 대형 공연장을 몇 달씩 전세 내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 여전히 ‘구석기’시대를 사는 정극과 나란히 수백억원이 오가는 초현대판 뮤지컬이 공존하는 곳이 지금 한국 연극 동네다.

뮤지컬 시장이 매년 15% 이상 성장세를 타면서 공연산업에도 대기업이 참여해 서울 강남과 잠실 등에 뮤지컬 전용극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문화와 연극의 거리’ 대학로가 소비와 향락의 거리로 빛을 잃어가는 한 요인이다.

마포구 신수동 앞뒤 건물에서 전화 한 대를 두세 집이 나눠 쓰며 더부살이나 셋방을 살던 출판계 얘기도 전설이 됐다. 강남 노른자위 땅에 사옥을 짓는 일은 보통이고, 아예 경기도 파주시 일대 48만 평에 출판도시를 건설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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