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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결의안 채택…북한의 선택은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핵과 미사일 문제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유엔 인권결의안에 대해 북한은 “핵실험을 더 이상 자제할 수 없다”며 핵 위협론을 꺼내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결의안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 등을 법정에 세우고 처벌하기는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번 유엔 결의안에 대한 대응으로 바로 핵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북한이 쓸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카드다. 목소리는 한껏 높이겠지만 결의안에서 김정은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는 만큼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결의안 채택으로 북한이 더욱 궁지에 몰릴 것은 분명하다. 최고 지도부의 책임을 묻는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된 것 자체가 북한 정권에겐 큰 부담이다. 실제 이번 결의안의 표결 결과는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 55표였다. 투표에 참여한 비동맹국 108개국 중 찬성 또는 기권을 한 나라는 91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수의 비동맹국들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으로선 우선 외교적 고립 탈피가 급선무다. 이를 위한 행보도 발빠르다. 북한은 유엔 결의안의 파장을 막기 위해 서방과 대척점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두 나라가 그 어느 때보다 북한과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대립하고 있다. 서방의 ‘고립 정책’의 일환인 경제제재로 어려움으로 겪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인권문제는 아킬레스건이다. 미 정부가 수시로 중국 내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문제는 미국의 대 중국 압박의 단골메뉴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 때마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맞서왔다. 북한은 남한ㆍ일본과도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남한과는 5.24조치 등 풀기 어려운 걸림돌이 있으며, 일본과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최용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17일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튿날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접견했다. 푸틴이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며 오랜 친선협조의 전통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자 최 비서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화답했다. 최는 김정은의 친서도 푸틴에게 전달했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양국 정상회담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우리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또 “인권문제의 정치화를 반대하며, 다른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되는 것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속내에는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중국으로 번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숨어있다.

북한 정권은 향후 중·러의 상황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엔 표결에서 보듯 비동맹권은 사안에 따라 북한에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 따라서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중·러에 대한 외교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로선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이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북·러 정담회담이 먼저 성사될 경우 정치ㆍ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큰 후원자인 중국의 오해를 살 우려도 있다. 김정은 정권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21세기 신(新) 등거리 외교’를 펼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1970년대 데탕트 시기 김일성 북한 주석은 중ㆍ러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는 자주노선을 표방했다. 김용현 교수는 “최용해의 방러로 북ㆍ러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이는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도 작용한다”며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이 중국과의 정상회담인 만큼 중국도 이에 어느 정도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지 3년이 다 되도록 아직 정상회담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예전과 다르다.

하지만 다른 전망도 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북ㆍ러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중국이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며 “지금은 70년대 중ㆍ소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상황에서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펼칠 때와는 다르다. 중ㆍ러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이 보유한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가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북한 정권이 자신의 효용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외교전략을 선택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국과 대화를 통한 관계개선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정부는 대북 제재 강화에 힘쓰고 있으며 북한 인권문제는 이를 위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며 “최근 중간선거에서 대북 강경파인 공화당이 상ㆍ하 양원 모두를 장악한 만큼 대북 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올해 미 정부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이란이 강경파 정부로 바뀌기 전에 핵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북한과 대화는 올해 안에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북한 문제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리고 중국의 입장에선 북한이 대미 전략에서 하위변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냉정'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정책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한ㆍ미ㆍ일 동맹의 대응수단으로 활용하는 만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둘러싼 정세 변화에 따라 북한의 몸값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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