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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문화'가 단속 대상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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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밴드 '카우치'가 생방송 중 알몸을 노출한 사건 이후 경찰이 홍대 주변에 있는 클럽에 대한 단속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알몸 노출 등 퇴폐적인 공연 등에 대한 단속은 필요하지만 자칫 홍대 거리 특유의 자유로움과 개방성마저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경찰 등도 단속 방법과 수위 등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일제 단속하라"고 지시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홍대 주변은 수십 개의 클럽과 500여 개의 밴드가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인디문화'의 본산지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공연 기획자들과 밴드들이 주축이 된 '홍대 앞 음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기자회견에서 "인디밴드들이 가진 다양성과 개성은 우리 문화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키운 원천"이라며 "우발적인 방송사고로 인해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인디문화 전체가 매도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최소한의 범위에서 단속=서울 마포경찰서는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은 뒤 클럽 영업을 하는 업소를 중심으로 단속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려면 '무도장'이나 '유흥주점'으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대 주변의 클럽 상당수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단속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또 홍대 부근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30여 개 클럽을 중심으로 공연 중 알몸을 노출하는 밴드들에 대한 단속도 함께 벌일 방침이다. 과거에 관객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등 퇴폐적인 공연을 한 사실이 지금에라도 확인되면 '공연음란죄'를 적용해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마포구청도 이 시장의 특별 지시에 따라 홍대 앞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을 불러 자발적인 단속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그러나 홍대 거리의 독특한 예술문화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에서 단속을 할 방침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찰이 단속을 느슨하게 할 경우 일부 밴드들의 음란.퇴폐 행위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크다"며 "이번 기회에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반발하는 홍대 앞 클럽들=단속 소식에 홍대 앞 클럽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에 서울시와 함께 '월드 클럽 데이'행사를 여는 등 세계적인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은 마당에 국가기관이 직접 단속에 나서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단속을 하는 것은 홍대 클럽을 예비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라며 "홍대 앞 밴드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도 "알몸을 노출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는 밴드는 빙산의 일각인데도 홍대 문화 전체가 퇴폐적인 것처럼 오해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홍대 주변의 개성 있는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부작용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안내 책자에 홍대 클럽거리를 '서울 100대 명소'라고 명시하면서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독특한 볼거리로 소개했었다.

한편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이번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인디밴드 카우치 멤버들 간에 말이 엇갈리고 있는 점을 중시, 이들이 방송 출연 전에 노출을 모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3일 재소환키로 했다.

손해용.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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