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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핵폭풍'] 공개 여론 업고 '통비법 제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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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안기부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의 변호인인 서성건 변호사(左)가 2일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씨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주 인턴기자

열린우리당이 2일 '불법 도청 테이프 처리 특별법' 제정 방침을 들고 나온 것은 테이프 내용 공개로 가기 위한 수순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우회하려는 것이다. 현행 통비법에는 도청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실정법 위반이란 장애물을 특별법 제정으로 비켜가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여권이 테이프 공개에 집착하는 것은 여론 때문이다. 한 주요 당직자는 "자체 조사 결과 70% 이상의 국민이 테이프 내용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문희상 의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현 집권 세력은 (도청이 이뤄진) 당시 '원천적 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무런 힘이 없었는데 무슨 권력형 비리에 개입했겠으며, 누가 불법 정치자금을 줬겠느냐"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구 기득권 세력의 불법.비리가 낱낱이 드러나면 인위적으로 추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대규모 정계 개편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별법에서 테이프 내용 공개 여부와 사후 처리를 맡을 제3의 기구는 가칭 '진실위원회'로 할 생각이다. 이는 국회나 검찰에서 공개 문제를 다룰 경우 여권이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 같다.

특히 테이프 내용 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관련된 문제가 나올 경우 호남 민심을 추스르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제3의 기구가 맡게 될 경우 보다 홀가분해 질 수 있다. 여당은 진실위원회 구성에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의 반응은 미묘하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특검 당론을 고수했다. 그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번 주 내에 특검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원내 수석부대표는 "민노.민주.자민련 등과 함께 야 4당이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의 부정적 과거를 털고 가자"는 반응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과거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 등 테이프 공개 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무성 사무총장은 이날 "(도청 테이프에) 열린우리당의 모(母)정당인 국민의 정부 시절 있었던 전 국민이 경악할 엄청난 사건이 담겨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전면 공개를 주장하는 민노당도 일단 특검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제3의 기구가 구성되면 결국 거대 양당이 위원을 추천하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공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민주당도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공개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테이프 내용 공개를 주장하는 민노당은 (특별법에 동참토록)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며 "한나라당도 무작정 반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선하.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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