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교육의 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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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고교의 평준화시책으로 공·사립학교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부작용이 생기리라는 것은 평준화시책을 시행할 당시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도리어 공·사립 중·고교간의 교육환경이 갈수록 차이가 나는 대도 사실상 속수무책인 교육당국의 자세에 있다.
최근 사립 중·고 교장회가 문교부통계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생1인당 연간교육비는 중학교의 경우 공립이 16만4천원인데 비해 사립은 14만원이고, 고교는 공립이 26만8천원인 반면 사립은 21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1인당 시설활용면적은 공립이 24·6평(고)∼15·4평(중)인데 비해 사립은 15평(고)∼9·7평(중)이었고 교사1인당 학생수 역시 사립이 국·공립에 비해 못미치고 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추첨으로 배정되어 공립학생과 똑같은 공납금을 내는 사립하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수업을 받아야한다는 것이 도무지 공평한 일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우기 같은 사립학교라 해도 그 실태는 천차만별이다. 재정이 튼튼하거나 설립자의 열의가 높아 공립을 앞질러 명문으로 발돋음 하는 학교가 있는가하면, 수업료만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사학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교사의 질이다. 일반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사대출신교사의 대부분이 공립학교에 배치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부 부실사학에서는 인건비 절약을 위해 호봉 높은 교사를 기피하거나 값싼 시간강사를 쓰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니까 운영상태가 부실한 사학에 배정된 학생들을 놓고 「평준화시책의 희생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사학재단의 이러한 현실을 무턱대고 매도하거나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의 실정인 것이다.
평준화시책이 공·사립 중·고교의 차이를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기는 해도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책의 첫째는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보조를 현실에 맞게 늘리는 일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보다 많은 민간자본이 사학에 투입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이다.
사학에 대한 정부의 보조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거나 규정이 까다로와 유명무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가령 학교당 용원은 4명, 서무직원은 2명만을 인정한다는 규정이 그것인데 실제로 필요한 인원은 기준의 10배는 넘어야 학교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사학관계자의 말이다.
충분한 국고보조를 못할 바에는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사학에 투자할 수 있는 과인체제라도 만들어야 한다.
75년까지만 해도 개인이건 기업이건 학교에 대한 출연금은 면세를 해주었다. 그런 혜택이 없어진 다음 사학을 세운 사람은 없다. 아무리 육영사업에 뜻을 두었다해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도시 무리한 요구일수 밖에 없다.
앞으로 중등교육과정은 훨씬 중요시될게 분명하다. 중학까지의 의무교육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의무교육기간을 고교까지 연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재원이건 교육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며, 특히 민간자본의 유치는 필수적이다.
최근 일련의 경제조치에 따른 금리체계의 변화로 민자가 육영사업에 몰릴 가능성은 훨씬 커졌다. 문제는 그 돈이 교육에 쓰이도록 「물꼬」를 터주면 되는데 어찌된 셈인지 문교당국은 그런 방향의 정책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문교부는 며칠 전 「평준화시책보완대책」을 발표하면서도 사학에 대한 뚜렷한 지원책은 밝히지 않았다.
공·사립학교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방치한다는 것은 「교육의 기회균등」을 표방한 평준화시책에도 어긋나는 처사인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교육받은 노동력」이다. 그 질이 떨어진다면 결국 국력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뿐더러 평준화 시책으로 자라나는 세대를 경쟁에서 보호한다는 것은 바로 내성의 약화를 뜻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력을 갖고 앞으로 고도산업사회의 경쟁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정부는 나라의 먼 장래를 내다보는 시각을 갖고 이 문제에 대처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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