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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원, 지금은 불법 도청 안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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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승규 국정원장이 어제 국회 보고에서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진상을 밝히려 한다"면서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다짐했다. 국정원은 또 조만간 안기부 미림팀의 불법 도청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문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국정원은 불법 도청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지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정원의 발표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정보기관의 불법 도청이 사회문제화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국정원은 부인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에 불법 도청을 인정한 것도 발뺌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일 뿐이다. 퇴직한 직원들에 의해 불법 도청팀의 존재와 도청 테이프의 유출 및 회수 과정의 잡음이 공개된 지 오래지만 국정원은 시인한 적이 없다. 게다가 "도청 자료를 모두 반납받아 소각했다"던 국정원 전 감찰실장의 진술도, "테이프와 자료를 모두 반납했다"던 전 미림팀장의 진술도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정보기관원으로서의 직업 윤리도 없고, 권력에 의한 불법 도청 지시를 거부할 용기도 없고, 뒤늦게라도 이를 밝힐 의지조차 없으니 국정원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불법 도청 테이프 수천 개의 행방은 어떻게 됐는지, 미림팀장이 국정원을 상대로 통신사업을 하게 된 데에는 뒷거래가 없었는지 국정원 스스로 밝혀내야 한다. 더구나 이 정부 들어서서도 공기업 사장과 공직자, 노조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관계기관에 넘겨주거나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업무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언제라도 권력과 연계될 위험성에 노출된다.

문제가 된 것만 마지못해 발표해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엄격한 자체 검증과 자기 고백이 필요하다. 불법 도청이 언제까지 자행됐는지, 현 정권하에서는 하고 있지 않은지 이 기회에 밝혀야 한다. 그것이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