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테이프 유출 경위 먼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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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의 불법 도청 및 테이프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유출 경위 조사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MBC에 불법 도청 테이프를 전달한 재미교포 박인회(구속)씨와 박씨에게 테이프를 건넨 옛 안기부 비밀도청팀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씨 등 핵심 관련자들의 신원이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다.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31일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부터 먼저 (수사)하고, 그 다음에 도청 자체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MBC 이상호 기자를 1일 소환키로 하고, 자해소동을 벌인 공씨가 입원 중인 병원에 수사관들을 보내 조사하는 등 신속하게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공씨에게 박씨를 소개해 준 것으로 알려진 공씨의 옛 동료인 임병출(58)씨의 신병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 "불법 도청에 초점 맞추는 검찰 수사"= 검찰은 우선 공씨를 상대로 불법 도청 테이프를 보관해 온 이유와 이를 이용해 삼성 이외의 다른 기업체나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는지 등을 추궁키로 하는 등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경위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후 안기부 비밀도청팀인 미림이 다시 만들어진 경위와 활동 등 불법 도청 행위 자체를 수사키로 했다.

이에 검찰은 공씨와 미림팀 소속 요원들을 상대로 ▶1994년 미림팀 재조직에 관여한 인물▶불법 도청을 한 일시와 장소, 대상자 선정 기준▶불법 도청 내용 보고 과정 등을 조사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YS.DJ정권 시절 불법도청에 관여했거나 도청 내용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천용택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과거 정권 실세들의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도청 내용 수사는 불가능"= 검찰은 테이프 내용의 수사 여부를 놓고 법리 검토를 한 결과 '수사 불가'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독수독과(毒樹毒果.독이 든 나무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의 전형적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운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따라 테이프 내용을 수사할 경우 수사기관 스스로가 위법 행위를 하는 셈"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는 초법적 권한이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세부처리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다.

검찰은 ▶공씨 등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도청 피해자의 선별적 공개▶도청 피해자 명단 전부 공개▶공개 없이 테이프 완전 폐기 등 세 가지 안을 놓고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27일 공씨 집에서 압수된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은 현재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의 주임검사실에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과 테이프 내용의 중대성을 감안해 검사 두세 명 정도만 테이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수사에 참여한 수사관들로부터는 '보안각서'를 받았다.

장혜수.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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