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제안] 야당에 권력 이양하면 대통령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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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과학자 3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황우석 서울대 교수(右)에게서 논문을 증정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에 합의해 주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대통령 권력을 넘기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에 하한기 정국이 달궈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지역주의 극복은 나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라며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있는 일"이라고 했다.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게 아니고 어떤 속임수도 없다"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참모들은 "노 대통령 정치 인생의 승부수"라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여소야대 구조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제안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퇴임 후 안전판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그 같은 차원이 아니며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소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의 권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놓을지에 대해 김 대변인은 "요즘 같은 책임총리제 상황에서 총리지명권을 한나라당에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경우 대통령과 야당 지명 총리의 권한 분리에 대해 김 대변인은 "현행 헌법하에서 하자는 것인 만큼 이원집정부제처럼 명확히 분리될 수 있겠느냐"며 "지금 구체적으로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만 했다.

선거에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다른 정당에 자의적으로 이양하는 대연정이 위헌적 발상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제 헌법이 아니다"며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되지 않고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각종 선거에서 여권이 '극우보수 정당''냉전세력'등으로 비난하며 노선의 차이를 부각해 왔던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정체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란 점도 쟁점이다. 노 대통령은 "양당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실제 노선 차이는 크지 않다"며 "역사성.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에 "새로운 역사를 위해 어두웠던 시절의 부채를 청산하고 새 출발의 결단을 해야 할 때"라며 "지역당의 한계를 넘지 않고는 정권을 잡더라도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이같이 반복해서 밀어붙이는 모양새에도 관심이 간다.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가 고조될 경우 "밖에서 비난만 하지 말고 함께 운영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공세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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