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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테이프 후폭풍] MBC, 박인회씨에 비행기표 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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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MBC가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를 입수해 방송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2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박인회(58.미국명 윌리엄 박)씨에게 MBC가 미국행 항공권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 테이프를 입수해 보도한 기자가 '박씨의 아들'을 사칭했다는 주장도 나온 것이다.

◆ 박인회씨의 출국에 도움? =도청 테이프를 MBC 기자에게 제공한 박씨는 26일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공항 출국심사대에서 제지당했다. 법무부가 출국정지한 상태였다. 이때 공항에는 박씨와 함께 출국을 하려던 MBC 기자 두 명이 있었다. MBC 관계자는 즉시 "박씨가 출국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테이프를 추가로 가지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 기자와 카메라 기자를 붙였다. 그동안 박씨와는 연락이 안 됐다"고 밝혔다. 박씨의 출국 계획을 눈치채고 취재를 시도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본지의 확인 결과 MBC는 전날인 25일 박씨와 기자 두 명의 항공권을 같이 구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항공권을 판매한 D여행사 측은 "MBC가 박씨와 기자 두 명의 일본을 경유해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했으며, 1인당 204만원의 요금을 MBC 측이 법인 신용카드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박씨의 변호인인 강신옥 변호사는 "박씨가 (좌석 여분이 없어)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MBC 이상호 기자에게 부탁을 했다. 박씨는 MBC 기자가 동행하려 한다는 것을 공항에서 알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박씨가 수사를 피해 출국을 시도하는 과정에 MBC가 개입한 경위와 MBC의 박씨에 대한 편의 제공 배경을 조사할 방침이다. MBC 관계자는 "제보자에게 취재를 위해 다소의 편의를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기자의 신분 위장=도청 테이프의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전 안기부 직원 임모(58)씨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MBC 이상호 기자가 '박인회씨의 아들'이라며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이 인터뷰에서 "올해 3월 말~4월 초 박씨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가 위독하다'며 접촉을 시도했다. 박씨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MBC 이상호 기자라는 사실은 나중에 TV를 본 아내가 말해줬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기자가 도청 테이프 관련 취재 과정에서 박씨 아들로 신분을 속이고 전직 안기부 관계자를 만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MBC 측은 "이 부분은 이 사건에서 굉장히 사소한 부분이다. MBC는 부끄러운 방식으로 취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국정원 조사=국정원은 이날 MBC 이상호 기자와 박인회씨 사이에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삼성에 테이프를 팔려는 시도를 했던 박씨가 공익 차원에서 MBC에 제보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진실을 명백히 밝힌다는 원칙에 따라 이 부분을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기자가 테이프 제공에 대한 답례로 1000만원을 준비했으나 건네지 않았다고 말한 점, 박씨가 도청 테이프 녹취록이 방송되기 직전에 입국한 점, MBC 기자 두 명이 박씨와 동반 출국하려 했던 사실 등에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동기.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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