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글로벌 수출 제약산업 발목잡는 약가제도 논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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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재정 지속가능성과 제약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균형있는 약가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약가제도로는 신약개발을 유인하고 이를 수출로 연결시키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임상시험에 필요한 막대한 개발비용을 어떻게든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적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결국 재투자를 어렵게 한다.

보험약가제도는 많은 논쟁거리를 갖고 있다. 보험의약품 가격을 두고 정부·국민·제약회사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정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하면 결국 의약품·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현재 보험약가제도는 신약을 개발해도 이미 출시된 의약품 보험약값보다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 업계 입장에서는 신약을 개발해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어 신약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는 의미다. 제약협회가 발간한 정책보고서 'KPMA 브리프 제3호'를 통해 제약산업 약가제도에 대해 알아봤다.

▶의약품 약값 적정 수준 두고 세계는 '분쟁중'

의약품 약값 수준은 전세계적으로도 논쟁거리다.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국 보건자원서비스청(HRSA)는 2013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1000여 개의 안전망 병원에서 희귀의약품을 최대 50%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는 규칙을 공표했다.

이 프로그램 실행을 두고 미국 제약협회는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 국가약가기구(NPPA)는 올해 상반기 당뇨병·고혈압 등 100여 개에 이르는 의약품을 대상으로 대규모 약가인하를 발표했다. 인도 제약산업 매출의 총 6%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 의약품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 보험의약품의 등재결정과 약가산정 방식을 대규모로 개편했다. 2012년에는 계단식 약가제도를 폐지하고 재평가를 통해 일괄적으로 약값을 인하했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약품비 규모를 전체 진료비의 26.1%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이선영 과장은 "이전까지에는 약품비 비중이 30%가 넘을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며 "지속적인 약가 재평가로 기준시점의 75%수준까지 약값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판단하는 약품비 증가 원인은 크게 ▶의약품 이용량 증가 ▶고가약 이용 증가 등 두가지다. 실제 국내 처방 1건당 의약품 품목수는 2012년 3.88개로, 미국 1.97개(2005), 독일 1.98개, 일본 3.00개, 호주 2.16개와 비교해 많다. 특히 소화기계 질환이 아닌 환자에게도 소화기관용약을 처방하는 비율이 45.06%로 높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인구 고령화 역시 의약품 이용량을 크게 늘렸다. 2013년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305만원이다. 전체 적용인구 1인당 연평균 진료비 102만원의 3배에 이른다. 노인 1인당 연평균 약품비 또한 82만원으로 전체 적용인구 1인당 연평균 약품비26만원인의 3배를 넘는다. 이 과장은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층이 늘면서 만성질환 유병률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실제 만성질환의 진료비 및 약품비 증가추이도 크게 나타난다. 2013년을 기준으로, 고혈압, 당뇨 환자의 전년대비 약품비 증가율은 8.6%, 12.6%로 총약품비 증가율 1.27%에 비하면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치매에 대한 약품비도 12.8%에 달한다.

보험약가정책은 보험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의약품 공급자의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과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이용접근성, 약을 처방·조제하는전문가의 이용행태, 나아가 오남용 등 약의 복용행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급력이 큰 만큼 매우 세심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 과장은 "약의 가격은 수학공식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약의 가치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으로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떨어지는 수익성 재촉하는 약가제도…제약업계 '힘드네~'

문제는 수익성이다. 과도한 약가인하는 신약 연구개발 투자 의욕을 꺾는다. 신약의 가치를 약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높은 이유다. 국내 제약산업은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실제 지난 9월 국내 21호 신약인 '리아백스주'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승인을 받기도 했다.

글로벌 진출도 활발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polmacoxib'은 보건복지부의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펀드를 통해 130억원을 지원받았고, 동화약품의 'zabofloxacin'은 미국 임상승인을 받았다. 동아ST는 올해 6월 FDA에 '시벡스트로' 시판 승인을 받았다. 성장 잠재력이 큰 개량신약·생물의약품 분야 개발도 활발하다. 이장호 제약협회 국내개발신약 TFT(LG생명과학) 부장은 "국내 의약품은 대내외적으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보험약가 측면에서는 적정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해외시장에 수출할 때 국내 약값을 참조해 수출가격을 결정하다 보니 수출 판매 전략과 가격 협상력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등재 당시 약값 자체가 낮은데다 지속적인 약가인하로 사업성이 떨어져 수출을 포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국산신약 14호인 일양의 ‘놀텍정 10mg’는 2009년 12월 발매 이후 시장형실거래가 상환제, 사용량-약가 연동제 유형1과 3, 사용범위 확대에따른 사전인하의 기전에 따라 최초 1405원에 등재됐다가 현재 1192원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앞으로 사용범위 확대에 따른 약가 인하와 동일제제 출시에 따른 약가 인하가 예상된다. 보령제약의 ‘카나브정’도 터키 진출을 준비하다가 낮은 약가로 인한 사업성 부족으로 수출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 부장은 "국내 의약품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의 규제정책과 지원정책간의 균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약이나 개량신약 등은 시판 후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해외 임상이나 적응증을 넓히는 재투자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현행 사용량-약가연동제도로 사용량이 늘면 주력품목의 약값이 떨어진다. 결국 제약회사의 이익률은 일정수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수익 구조가 악화돼 제품 가치를 높이는 것이 힘들어 진다. 국내 제약산업은 하향평준화되고 국제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부장은 "국내 의약품의 활발한 해외진출과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은 경쟁력 있는 약값"이라며 "2017년 세계 10대 제약강국 도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약가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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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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