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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기자의 '노래가 있는 아침']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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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는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1996)입니다. 이 곡은 일명 ‘공주병 신드롬’의 진원지였습니다. 1990년대는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던 시대였죠. 집에서 공주·왕자대접을 받고 자란 나머지, 학교나 사회에서도 같은 대접을 바라는 신세대 철부지를 일컬어 공주병·왕자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김자옥은 자신의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코믹하게 전복하면서 이런 시대상을 풍자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1993) 만큼이나 시대를 꿰뚫어본 노래였죠.

김자옥의 별세 소식을 듣고 그에게 가수를 제안했던 태진아 진아기획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가수를 권하게 됐나요?

“처음 만난 게 95년 말 지방 공연이었어요. 커피 한잔을 하면서 ‘왜 요새 TV에 자주 안 나와요?’라고 물었죠. 당시 김자옥씨가 주춤할 때였거든요. 힘들다고 하기에 ‘그러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자. 지금까지 청순가련한 역할만 했으니까 코미디를 하면 대반전이 있을 거다’라고 즉석에서 제안했어요. 망설임 없이 ‘그럼 한 번 시켜봐 주실래요?’라고 하더군요.”
김자옥이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MBC)에 출연하게 된 연유입니다. 그는 공주병에 걸렸으나 미워할 수 없는 여고생을 맛깔나게 연기했습니다. 방송은 2주 만에 ‘대박’이 났고, 가수 데뷔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공주는 외로워’ 음반은 30~40만 장이 나갈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김자옥씨한테 그런 재능이 엿보였나요?

“다재다능한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평소에도 늘 밝은 모습이라 코믹 연기도 잘할 것 같았고요. 연기를 하든, 노래를 하든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고생 교복을 입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늘 ‘주어진 내 역이다’ 생각하면서 행복해 했어요. 억지로 하는 연기자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김자옥의 연기 인생은 탄탄대로였습니다. 드라마·영화·연극·예능까지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그가 연기한 어머니상은 색다른 지점이 있었습니다. 소녀시절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사랑스러운 푼수 엄마였달까요. 억척스런 조선의 어머니가 아닌, 세상 모든 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가 지난 16일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누가 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영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래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의 해맑은 웃음을 자주 따라하겠습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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