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수출 금지된 핵무기용 물질 "한국업체서 몰래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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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이란에 수출이 금지된 핵무기 개발용 물질을 판매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25일 보도했다. 잡지는 한국의 방사성 동위원소 판매업체인 K사가 이란 기업과 두 차례 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K사가 지난해 이란 기업인 파토리스에게 방사능 물질인 니켈 63을 팔았고, 프랑스에서는 다른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를 사들여 파토리스에 넘겼다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무기 개발 의혹 국가인 이란에 방사능 물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슈피겔은 “비밀문서를 통해 이런 거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K사는 니켈 63 판매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삼중수소에 대해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이란 측은 핵무기 개발용 방사능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K사와 두 차례 비밀 계약을 체결했다. 첫번째 거래는 2004년 12월 24일 K사가 니켈 63을 9만8720 달러에 판 것이다. 이 물질은 통상 가스탐지 등을 위한 민간 용도로 쓰이지만 전자를 방출하기 때문에 핵폭탄 기폭장치를 작동하는데도 사용된다고 슈피겔은 보도했다. 이란 측이 K사에 특수보호 용기에 넣어 운송해 달라고 요구한 이 니켈 63(방사능량 15mCi)은 민간용으로 볼 수 없다고 잡지는 주장했다. 1퀴리(Ci)는 초당 370억 개의 원자핵이 부서져서 생기는 방사성 물질의 양을 말하며 1mCi는 1000분의 1Ci다.

슈피겔은 삼중수소(트리튬)도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이 물질은 핵발전은 물론 핵무기 개발에도 필수적이라고 잡지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엠바고 품목인 이것을 유럽에서 사들이기 위해 한국 기업을 거치는 등 우회로를 택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요청에 따라 K사가 프랑스 EADS 조더른에 트리튬 3만3000달러 어치를 주문했고, 그걸 받아 이란에 넘겼다는 것이다.

잡지는 이란이 확보한 물질이 핵개발용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거래가 비밀리에 이뤄졌고, 파토리스는 거래 당사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파르토 나마제 톨루아’라는 유령회사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K사 관계자는 “니켈 63의 경우 이란 회사가 가스탐지용으로 쓰겠다고 해서 각서를 받고 판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중수소는 이란 회사로부터 구입 문의를 받기는 했지만 판매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K사는 산업용 기자재만 취급하는 회사이며 원자력법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삼중수소는 판매할 수 없다”며 “프랑스 EADS 조더른과 거래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과기부 원자력국 이순종 사무관은 “K사는 방사성 동위원소 수출과 관련해 과기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기업이므로 니켈 63을 판매했다면 국내법규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K사와 관련있는 H사는 허가를 받은 기업이지만 니켈 63에 대한 수출 신고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상황을 파악중”이라고 말했다.

원자력국 안상준 사무관은 “K사가 삼중수소를 수출했다는 제보가 있어 지난 1월 조사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만약 몰래 수출했다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K사가 정당하지 못한 거래를 했다면 원자력 공급국 그룹(NSG)의 수출통제를 어긴 것이 된다”며 “이 경우 정부는 NSG에 사실 관계를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고 말했다.

◇니켈 63=방사성 동위원소로 방사선을 발산한다. 가스나 화학물질 검출 능력이 뛰어나 잔류 농약이나 가스 성분 검사에 쓰인다. 군수용으론 화학가스 잔류 농도를 파악하는데 사용된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전략물자에 포함돼 있지만 한국 기업이 이란에 팔았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게 과기부의 설명이다.

◇삼중수소=핵통제 물질이다. 수소폭탄 제조용으로 쓰인다. 수소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으로 공기 중에는 극미량이 존재한다. 시판 중인 삼중수소는 원자로에서 합성된 것이다. 이 물질은 중계 수출을 한다고 해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박방주,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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