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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정치권 "내놔 !" 금융권 "못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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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 해 2000억원에 달하는 휴면 예금 및 보험금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금융권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치권은 최근 휴면 예금과 보험금을 국고로 환수해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잇따라 준비 중이다. 이에 맞서 은행과 생명보험.손해보험 업계가 제각기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휴면예금과 보험금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금융권이 갑자기 바빠진 것이다. 두 방안 모두 노약자나 불우계층 등 사회소외계층 지원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운영 주체와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에선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은 휴면 예금과 보험금 전액을 국고로 환수해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금융권은 관리비용 등을 제외한 일부 금액만 출연하고, 운영도 해당 업계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 쌓이는 휴면 예.보험금=은행들은 대개 잔고가 100만원 미만인 계좌 중 2~5년간 거래가 없는 경우 예금자가 돈을 찾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거래중지계좌'로 분류한다. 또 거래중지 상태가 5년간 지속되면 상법의 소멸시효를 적용해 은행의 잡수익으로 처리한다. 이 같은 휴면예금은 지난 한 해에만 1594억원에 달했다. 계좌당 평균 잔액은 7450원에 불과하지만 워낙 계좌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계약이 실효되거나 계약기간이 끝난 뒤 2년이 지날 때까지 고객이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휴면보험금으로 처리한다. 휴면보험금은 지난해 생보업계에서 1050억원, 손보업계에서 165억원이 발생했다. 그동안 쌓인 휴면 보험금은 지난해 말 현재 생보업계 3250억원, 손보업계 726억원에 이른다.

◆ 정치권 선공에 다급해진 금융권=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올 정기 국회 때 '휴면예금 처리에 관한 법률'과 '사회공헌기금법'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지난달 밝혔다. 휴면 예금이나 보험금 조회와 인출을 쉽게 하는 한편 그래도 찾아가지 않는 돈은 기금으로 조성해 소액신용대출과 신용회복사업 등 공익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도 휴면 예금을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예산에 쓰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권도 다급해 졌다. 손보협회는 26일 "휴면 보험금의 일부로 11월까지 공익재단을 설립해 교통사고와 보험범죄 예방 사업 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은행연합회는 11일 저소득층의 창업과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공익법인을 10월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생보협회도 질병 퇴치와 노약자 지원 등을 위한 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휴면 예금 등을 국고로 환수하는 것은 사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미 의원은 이에 대해 "원래 고객 돈인 휴면 예금을 은행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사회에 기여하려면 스스로 번 수익에서 나눠 내는 게 떳떳하다"고 반박했다.

◆ 외국에선=미국의 경우 5년간 거래가 없는 휴면 예금과 보험금은 사회보장청이나 주 정부에 귀속된다.

아일랜드는 일정기간 거래가 없는 휴면 예금을 정부 기금으로 모아 장애인 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하는 휴면계좌법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선 은행들이 보통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고객에게 계좌 유지 여부를 묻는 통지서를 한 달에 한 번씩 보낸 뒤 10년간 휴면 상태가 지속되면 잡이익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휴면 예금 규모가 매년 1억 파운드(약 1832억원)를 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은행의 휴면 예금 잡수입에 대해 중과세하거나 사회에 환원토록 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 어떻게 확인하나=휴면 보험금 내역은 생보협회(www.klia.or.kr)나 손보협회(www.knia.or.kr) 홈페이지의 조회 코너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주민등록증을 갖고 해당 보험사를 방문해 돌려받으면 된다. 보험금이 100만원 이하일 경우 주민등록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팩스로 보험사에 보내면 계좌로 송금받을 수 있다.

은행권은 휴면 예금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별 은행에 찾아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해당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조흥.외환은행 등 일부 은행은 홈페이지에 휴면 예금 조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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