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헌을 다짐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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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또 다시 제헌절을 맞는다. 어느덧 34번째다. 1948년7월17일『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국내외에 선언한 새 헌법이 제정, 공포됨으로써 우리 나라는 유사이래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출범 시켰다.
일제 식민통치의 굴레를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근대적 헌법을 갖게된 그날의 감사는 34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새로운바 없지 않다.
헌법제정에 참여했던 제용 의원들의 대부분은 타계했고 생존자들이라야 오래 전에 정치일선에서 떠났으나 이맘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정치를 실현시켜보겠다는 그때의 이상, 그날의 의욕이 다시금 되새겨지기 때문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한 헌법의 제정으로 신생대한민국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한껏 부풀었으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헌정사는 무려 여덟 차례의 중단과 기복을 겪어야했다.
국가의 기본법이며 최고의 실증법규범인 헌법이 이처럼 수난과 곡절을 겪은 것은 한마디로 신생 한국에 그만큼 많은 문제와 고민이 있었다는 특수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개헌파동이 대체로 위정자의 자태나 권력욕에 연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시민으로서의 국민적 경험이나 훈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서구민주주의, 그것도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것을 무작정 이입시킨 데서 온 진산 이라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나 우리 나라 특유의 여건을 감안해서 만든 제5공화국용법은 근대헌법의 필수적 기본원리인 인권보장과 권력의 제한에 있어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임기에 관한 한 개정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축으로 못박음으로써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제도화한 것은 변칙적인 헌정운용이나 비극적인 헌정중단이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염원이 국민적 차원으로 확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있어서도 인신 보호를 위한 구속적부심의 부활, 연좌제폐지, 확정 재판 건 형사피고인의 무죄추정 등은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해서 진취적 규정으로 풀이된다.
오는 10월27일로 공포2년을 맞는 새 헌법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제도화를 비롯해서 인권의 신장 및 더 높은 수준의 복지와 사회정의를 약속하고 있지만 새 헌법에 담긴 국민적 여망과 정치적인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국민개개인이 나름대로의 결의와 자세를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또 그같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별 가치도 없는 것임을 알아야겠다.
서구에서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는 지배층과 권력에 참여하려는 피지배층이 수백 년을 두고 투쟁한 결과 서로의 입장을 존중키로 양해가 성립되었을 때 비로소 서구민주주의는 정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권리확보에 용감했던 시민들은 법을 준수하고 의무이행에도 성실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길다고 할 수 없는 우리헌정사는 만신창이가 될 만큼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민주공화국이란 국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면 우리헌정사는 더디기는 해도 민주주의의 실현에 한발 짝 씩 다가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무어라 하건 민주주의는 우리국민의 의식 속에 가장 귀중한 가치의 하나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의 일은 위정자는 위정자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각자의 입장에서 이제 움직일 수 없는 국정 목표가 된 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하는 일에 힘쓰는 일이다. 헌법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해도 이를 지키지 앉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새 공화국 출범 후 두 번째 맞는 제헌절이 우리 나라의 모든 정치인들이나 국민이 헌법에 담긴 정치 이념을 되새겨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약하는 날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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