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30년 만에 다시 통일 기원 제주섬 종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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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30년 만에 다시 제주섬 종주에 나서는 오현등고회 회원 다섯 명.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봉준·임시영·이용진·현대수·김창영씨.

제주의 산악인들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제주섬 동서 종주에 나선다. 광복 30주년(1975년) 당시 다졌던 조국통일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타임캡슐'이란 말조차 생소할 때, 종주 출발점이었던 남제주군 성산 일출봉에 묻어둔 '기억의 유리병'도 찾아내 열어 볼 계획이다.

서봉준(53).임시영(50)씨와 49세 동갑내기인 김창영.이용진.현대수씨 등 다섯 명이 그들이다. 당시 대학생 또는 대입준비생들로 제주 오현고 산악부 출신 모임인 '등고회' 멤버들이다.

등고회가 종주에 나서도록 제주산악연맹이 특명(?)을 내렸고, 75년 8월 15일 아침 이들과 제주산악인 50여 명은 제주 동쪽 끝 성산 일출봉 분화구에 모여 출정식을 했다.

조국 광복을 기념해 만세삼창을 한 이들은 태극기에 통일염원을 써 넣었고, 30년 뒤 이곳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그 의지를 '기억의 유리병'에 담아 분화구 한 켠에 묻었다. 70년대 등반 기록 등의 메모도 함께 묻었다.

이들은 곧바로 국토남단 최고봉인 한라산으로 향하는 50여 ㎞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길다운 길이래야 제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5.16도로가 유일한 때 이들은 중산간 지대를 뚫고 걸었다. 4박5일 뒤 한라산 정상에 도착한 이들의 종주는 다음해 8월 15일 한라산 정상에서 3박4일을 걸어 제주도의 서쪽 끝인 북제주군 고산 수월봉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30년 만에 이뤄지는 이들의 장정은 다음달 12일부터 15일까지 3박4일간 일출봉~한라산~수월봉까지의 100㎞. 길이 좋아져 종주 기간이 짧아졌다.

참가자들도 약관을 갓 넘긴 청년에서 머리칼이 희끗한 장년이 됐다. 임씨는 제주산악연맹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고, 이씨와 현씨 등은 여행사와 자영업을 하고 있다.

종주 도착점인 수월봉에서는 40년 뒤인 2045년 광복 100주년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기억의 항아리'도 묻을 계획이다. 한반도기에 통일염원을 써넣고 제주산악인의 다짐을 기록한 결의문.사진 등도 항아리에 담는다.

종주팀의 단장 역할을 맡고 있는 임씨는 "모두가 30년 전의 그 마음으로 그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걷기로 했다"며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엔 제주에서 북녘의 백두산까지의 남북 종단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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