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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시작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 영화감독 장진·박광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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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시작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 영화감독 장진(左)·박광현씨가 하늘을 바라보며 그들의 꿈인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과거 유명 영화감독과 무명 광고PD가 대번에 눈맞다

"감독님,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팬이에요.""누구~신지…."

2001년 가을. 영화감독.연극 연출가 등 전방위 문화활동가로 유명한 장진 감독 앞으로 무명 CF 프로듀서였던 박광현씨가 찾아왔다. 그는 "평생 꿈이 영화"라며 도움을 청했다. 장 감독은 나이도 두 살이나 많은 사람이 허리를 굽히자 다소 당황했다. "혹시 써 놓은 시나리오가 있나요?"

박씨는 두 편을 내놓았다. 시나리오를 받아든 장 감독은 숨을 가다듬었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네.' 그중 1980년대 아이들의 희망상품 1호였던 나이키 운동화를 소재로 달동네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정감있게 그려낸 작품에 손이 갔다. "당장 같이 합시다." 2002년 여름 월드컵 열풍 당시 선보였던 3부작 영화 '묻지마 패밀리' 중의 '내 나이키'는 이렇게 시작됐다. 박씨는 이 작품에서 감독 타이틀을 처음 달았고, 장 감독은 기획.각본.제작을 맡았다.

인연은 계속됐다. 2002년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을 준비하던 장 감독은 희곡 1차 완성본을 바로 박씨에게 건넸다. "이거 영화 한번 만들어 보지 않겠어요?" 박씨로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아니, 뭘 믿고 이러지." 희곡을 받아든 박씨는 장진 특유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에 시쳇말로 '필'이 꽂혔다. 그리고 3년. 신하균.정재영 캐스팅이 "흥행 파워가 달린다"는 이유로 몇 차례 퇴짜 맞았던 '동막골'이 드디어 극장에 걸린다.

우연일까. 장 감독 또한 2000년 LG아트센터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를 직접 스크린에 옮겨 '동막골' 1주일 뒤에 개봉한다.

# 현재 100억 대 50억 88일 대 30일 운명의 작품 대결

100대 50. 실력 차이가 확연한 농구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동막골'과 '박수'의 제작비(단위 억원, 마케팅비 포함)다. 88대 30. 두 작품의 촬영 일수다. 크기만 볼 때 '동막골'이 '박수'의 두 배 정도다. '연하의 스승'보다 '연상의 제자'가 훨씬 큰 판을 벌였다. 두 영화 모두 주연으로 나오는 신하균은 "내가 가장 오래 찍은 영화(동막골)와 가장 짧게 찍은 영화(박수)"라고 견주기도 했다.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6.25 당시 강원도의 외딴 산골마을에서 벌어지는 남북의 살벌한 대치상황을 유머와 동화적 화면으로 따뜻하게 무너뜨리는 '동막골'과 달리 '박수'는 특급호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수사과정을 TV로 48시간 생중계한다는 발상이 독특하다. '동막골'이 분단이란 민족비극을 '울음 반 웃음 반'으로 이겨내는 살가운 드라마라면 '박수'는 현대인을 옥죄는 미디어의 위세를 비틀고, 풍자한 이지적 코미디다.

▶박광현= 화면 구성에선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박수'를 보니 '동막골'이 헐렁하게 보였어요. 마치 '인물열전'처럼 검사.용의자.투숙객 등 다양한 인물이 촘촘하게 맞물린 '박수'에 또 한번 배웠습니다.

▶장진= 규모가 큰 영화나, 인물들의 따뜻한 심성을 끌어올리는 데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동막골'도 흔쾌하게 넘겼지요. 박 감독이 할리우드 키드라면 전 아직도 대학로 언저리입니다.

▶박= 장 감독의 아이디어에 항상 놀랍니다. 보물창고 같아요. 제가 가진 껍데기에 장 감독이 알맹이를 채워준 셈이죠. '1+1>2' 같은 시너지를 발휘한 것 같습니다. 궁합이 잘 맞는 부부라고나 할까요.

▶장=제 방식이 직설.압축.생략이라면 박 감독은 은유.상징.환상입니다. 저 같으면 동막골 같은 평화로운 공간이 남아있을까 고민했을 텐데 박 감독은 아예 마을 전체를 통째로 만들었잖아요.

그들의 말처럼 '동막골'에는 유쾌한 감동이 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마을 곳간에 있던 옥수수가 팝콘으로 변해 눈처럼 쏟아지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한편 1분당 시청률 70%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한 리얼리티 TV쇼를 다룬 '박수'에선 스타급 검사와 살인 용의자의 심리전이 팽팽하게 흐른다.

# 미래 닮은 데 없지만 끈 놓고 싶지않다 버리지만 않으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적다. 서로 "닮은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장 감독은 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일찌감치 충무로에 뿌리를 내렸지만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온 박 감독은 95년부터 광고계에 몸을 담아왔다. 배우 최민식이 "거칠은 벌판으로/달려가자…"고 노래하는 모 보험사 광고가 박 감독이 만든 CF다. 외모에서 '강남' 냄새를 풍기는 장 감독이 아직 총각인 반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박 감독은 두 아이의 아버지다.

▶박=영화로는 장 감독이 훨씬 선배죠. 그의 재치와 상상력을 따라갈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특히 언어감각이 대단해요. 장 감독이 제게 많은 능력을 나눠준 셈입니다.

▶장=두 영화의 반응이 정말 궁금해요. '동막골'이 더 크게 성공해 "장진은 역시 시나리오나 써야 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하하) 비주얼 연출력이 저보다 월등한 것 같아요.

그들은 영화가 연극의 상상력을 확장시켰다고 자신했다. 연극에서 느꼈던 배고픔을 채웠다는 것. 예컨대 무대에선 표현하기 어려운 웅장한 전투신(동막골), 첨단 수사본부(박수) 등을 대형세트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끈을 놓고 싶지 않다"(박광현), "박 감독 일이라면 언제든 백의종군하겠다"(장진)라며 서로 어깨를 두드렸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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