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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 vs 10만명 … 원정팀의 지옥을 탈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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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6일 이란 에서 선수들이 준비한 환갑(15일) 기념 케이크를 받은 슈틸리케 감독. [사진 대한축구협회]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Azadi)’에서 따온 아자디 스타디움. 하지만 상대팀에겐 결코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이 곳은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린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40년간 2무3패로 승리가 없다. 14일 요르단과 평가전에서 전반 34분 한교원(전북)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한국은 18일(한국시간) 오후 9시55분 ‘무덤’에서 첫 승에 도전한다.

 2012년 10월 기자가 가 봤던 아자디 스타디움은 고대 로마 검투장과 흡사하다. 여자는 입장 불가라 10만 명의 남성이 토해내는 광적인 응원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기자석에는 강화 유리 보호벽이 설치돼 있다.

 해발 1273m 고지대라 체력 소모도 크다. 고지대에서 90분을 뛰는 건 평지에서 130분 이상 뛰는 것과 비슷하다. ‘산소탱크’ 박지성도 자서전에 ‘차라리 날 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고 적었다. 엄청난 소음과 고지대 핸디캡을 이겨내야 한다.

 한국은 이란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이란의 박지성’ 자바드 네쿠남(34·오사수나·A매치 143경기 37골)은 한국을 만날 때마다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도발했다. 과거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은 “네쿠남인지 다섯쿠남인지 농구선수냐”고 응수했고, 손흥민(레버쿠젠)도 “네쿠남이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겠다”고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2차례 맞대결에서 네쿠남을 막지 못해 2연패를 당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최강희 감독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기도 했다.

 대표팀 주장 구자철(25·마인츠)은 16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이란은 종종 리드를 잡으면 시간을 지연하고, 페어 플레이 정신을 잊은 채 상대를 보호하지 않는 경기를 한다. 아시아 축구 질을 떨어뜨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분명 꾸준한 아시아 강팀이다. 볼프스부르크에서 함께 뛰었던 아쉬칸 데자가는 유럽 경험이 풍부하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1위로 아시아 1위다. 한국은 66위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다시 주장 완장을 찬 구자철은 “월드컵에서 내가 주장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며 “월드컵 후 한동안 패닉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게 다 잘못됐고, 모든 게 다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축구 선수는 축구를 통해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9월 마인츠를 찾은 울리 슈틸리케(60) 대표팀 감독을 만난 구자철은 “‘무서운 감독이 될 수 있겠다. 우리를 바꿔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6일 이란에 입성한 대표팀 선수들은 15일 슈틸리케 감독을 위해 ‘깜짝 환갑잔치’를 열었다. 식당 불이 꺼지자 선수들은 숫자 ‘60’ 모양의 초가 꽂힌 케이크를 전달하며, ‘슈 감독님’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해줬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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