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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숨은 지도 찾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1호 21면

“애들 교과서에는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을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테슬라가 원조지.”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10> 유·무선 통신의 부침

이 교수의 천재 과학자 테슬라(사진) 이야기는 100년 전 일인데도 순식간에 오늘의 문제로 이어진다. 형광등도, 레이저도, 수직이착륙기도 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류가 에너지를 공짜로 쓰도록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는 것이다. “공기처럼, 물처럼. 이를테면 우주 에너지를 만들어 무선으로 보내는 거지. 테슬라 코일은 그가 꿈꾸던 세상이었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가공할 힘으로 비밀 병기를 꿈꾸고 있으니 역사는 진화하는 게 아니라 퇴화하고 있는 것이지.”

검색을 해보니 테슬라 코일이 마침 과천 국립과학관에 설치돼 있다. 220볼트를 400만 볼트로 증폭시키는 것을 형광등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데, 가장 인기 있는 코너라고 했다. 애들 데리고 여기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땅에서처럼 바다에는 전신주를 세울 수 없어. 항해하는 배에서 절대로 못하는 것이 유선 통신이나 전화거든. 그러니까 무선 기술은 해양세력권의 꿈이었던 것이지.” 이 교수는 타이타닉의 침몰은 무선 통신의 시대의 개막과 극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무선 통신사가 4명 있었어. 배가 빙산에 부딪히자 이들이 구조를 청하는 무선을 쳤지만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던 배의 통신사가 무전기를 끊고 자고 있었다고 해. 그때 그 녀석만 졸지 않았어도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을 텐데….”

‘타이타닉’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뱃머리에 서서 십자 허그를 하는 장면과 셀린 디옹의 애절한 노래 선율을 떠올릴 테지만 역시 이 교수는 타이타닉의 침몰에서 정보시대와 바로 이 칼럼 3회에서 언급했던 해양과 대륙세력이 반전되는 신(新)지정학으로 이어진다.

“마르코니는 무선통신 기술을 영국에서 특허를 내고 그곳에 회사도 세웠어. 그의 조국 이탈리아는 구대륙의 지는 해라 관심이 없었던 거지. 섬나라 영국이 세계의 정보를 쥐고 있었다는 뜻이야. 이 같은 무선 기술은 영국을 통해 미국으로 전달되고 두 나라가 거대한 해양국가의 세력권을 형성하잖아. 그래서 영불간 도버해협보다도 영미 간의 대서양 바다가 더 좁았다는 아이러니가 생겨나게 돼. 인터넷 용어만 해도 거의 모두가 해양문명권에서 생긴 것들이야. 내비게이션이란 말이 바로 항해한다는 뜻이 아닌가. 블로그는 웹(web)과 로그(log)의 결합어인데, 로그가 뭐야. 배에서 통나무(로그)를 던져 속도를 잰 것을 기록한 항해일지잖아. 물론 대륙도 만만찮아. 컴퓨터를 시동하는 ‘부팅’은 부츠를 신는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노마드(유목민)들의 생활습관에서 나온 용어거든.”

인터넷 공간을 바다로 보느냐 초원으로 보느냐. 해양과 대륙이 맞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의 이야기는 바둑 같다. 돌들을 여기저기 그냥 툭툭 놓는데, 어느새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집을 만든다. 유선과 무선 이야기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지정학 문제로 점프한다. 거대한 문명을 읽는 섬세한 더듬이다.

“컴퓨터망이 광케이블에서 무선 와이파이로 옮겨가고 있지만 아직도 경합 중이지. 특성이 서로 달라. 유선과 무선은 대립이 아니라 공생해야 하는 것처럼 새로 대두되는 브릭스 국가의 랜드 파워(land power)와 기존의 시 파워(sea power)역시 갈등과 대립으로 가서는 인류의 미래는 없어. 내가 10년 전 디지로그 문명을 주장하고 한중일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랜드 파워인 중국과 시 파워인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반도의 사활을 건 미래 전략이 나와야지.”

마침 이번 주는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맞춰 한중FTA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외교적 스탠스는 더욱 중요해졌다.

“중국이 대륙에 유선 전화를 놓았다면 세계의 동(銅)이 동났겠다. 무선 휴대전화는 중국을 바다로 만든 거야. 유선이냐 무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교수가 크게 웃는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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