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시샘했던 파격 아이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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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32면

저자: 엘사 스키아파렐리 역자: 김홍기 출판사: 시공사 가격: 1만6000원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1890~1973). 그가 왜 전설인지 알게 된 건 파리의 한 자수 공방에서였다. 고급 맞춤복을 위한 자수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아카이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스키아파렐리의 컬렉션이었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이것이 보물 상자나 다름없어서, 그의 옛날 옷을 보고 다음 컬렉션의 영감을 얻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쇼킹 라이프』

그는 1920~30년대 패션계를 뒤흔든 세기의 디자이너였다. 기존 패션의 문법을 철저히 회피했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파격의 연속이었고 ‘최초’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오죽하면 같은 시기 활동했던 가브리엘 샤넬이 그의 천재성을 두려워하며 질투심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을까.

자서전은 시간을 거슬러 그 파격과 최초의 행적을 소개한다. 로마·파리·미국·런던 등을 종횡무진 누비는 사연과 함께 그 장소에서 만난 수많은 문화예술계·사회 명사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도 시대지만, 단순히 옷 만드는 사람만이 아닌 세상사에 관심을 두던 그의 열정이 함께한 결과다. 책 제목이 된 ‘쇼킹 라이프’는 그가 히트시킨 ‘쇼킹 향수’ ‘쇼킹 핑크’를 빗대 지은 것임에도 그의 삶을 묘사하는 최적의 키워드로 읽힌다.

어린 시절 일화부터가 쇼킹의 맛보기다.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려 목구멍·귀·입에 씨를 심고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거나, 여섯 살에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에 갔다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일은 부모들을 기함시킨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유복한 출신임에도 오직 자유를 찾아 파리·런던으로 향하고, 결혼에 실패하며 어린 딸을 홀로 키우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삶을 헤쳐간다.

패션과 인연을 맺은 계기 역시 극적이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의상실에 찾아간 스키아파렐리. 옷에 빠져든 그에게서 어떤 기운을 느꼈던 것인지 푸아레는 코트 한 벌을 내민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신은 마음껏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수 있어요.”

어느 날 친구가 입고 온 스웨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눈속임 기법(트롱프뢰유) 스웨터’를 만든다. 마치 스카프를 맨 것처럼 스웨터에 리본을 수놓은 옷은 대성공을 거두며 그를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만든다. 이후 그는 해골 모양 드레스, 튜브처럼 생긴 니트 모자 ‘매드캡’ 가슴 패드를 넣은 옷 등 지금껏 없었던 패션을 만들어 내고, 여밈을 드러내지 않는 관행을 깨고 드레스에 지퍼를 다는 파격을 행한다.

의상실을 벗어나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등과 우정을 나누며 작업을 펼친다. 특히 달리와 만든 랍스터가 그려진 드레스는 초현실주의 예술을 의상에 접목시킨 대표적인 작품이다.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드라마틱한 인생이기에 배경 지식 없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여 맨 뒤에 실린 역자의 ‘해제(解題)’를 먼저 읽는 것도 낫겠다. 한 가지 더. 한 단락 안에 1인칭 ‘나’와 3인칭 ‘그녀’가 뒤섞여 있는 서술법은 낯설기 그지없지만, 스키아파렐리라는 인물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파격’으로 이해하면 흥미롭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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