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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30 일터에서

"요즘 밤일 잘 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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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비아그라 먹어 봤느냐,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파느냐?" 내 직업을 말하면 이처럼 짓궂게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처음에야 얼굴 붉히며 당황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대처 능력이 생긴 것이다. "발기부전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비아그라가 어떤 약이냐 하면요…."

약대를 다니면서 약국.병원 등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해 봤지만 좀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좀 더 전문적이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제약회사에 원서를 냈다. 제약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자면 우선 현장경험이 필수라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영업부터 시작키로 한 것이다.

제약회사 영업이라 해서 옛날처럼 약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파는 '약장수'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의사들을 만나 업계 정보나 최신 임상결과 등을 제공해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환자들에게 많이 처방토록 하는 게 내 역할이다.

초창기 비아그라 영업은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어디서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비아그라 얘기만 나오면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이야기는 농담으로 흘렀다. 의사 선생님들도 약물의 기전이 어떻고, 최근 임상결과가 어떻다는 내 이야기를 귓전으로 흘려 버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만날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이대로 무시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우선 상대에게 우습게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학생 때부터 길러 묶고 다니던 머리도 짧게 쳤다. 더운 여름에도 되도록 긴소매 정장을 입어 프로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또 처음부터 내 얘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귀에 쏘옥 들어올 만한 첫마디를 준비했다. "선생님, 첫 경험은 무조건 비아그라예요." "가끔 필요하지 않으세요?"가 바로 그것이다. 앞의 문구는 다른 영업사원들이 보통 "비아그라가 1차 처방약이 돼야 한다"고 떠드는 문구를 나만의 '섹시한' 표현으로 바꿔 본 것이다. "가끔 필요하지 않으세요?"도 궁리 끝에 개발한 야심작이다. 의사가 병원에 온 환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발기부전을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뭘까 고심하다 떠올린 문구다.

요즘은 병원에 가면 오히려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말씀을 먼저 꺼낸다. 환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데 어찌 대답하면 좋을지, 환자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은 없는지 조언을 구한다.

하루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평소 힘자랑을 엄청나게 한다는 환자 이야기를 들었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이 환자는 병원에 올 때마다 근육을 내보이며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환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보통 발기부전이나 성생활에 대해 의사와 상담하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정작 병원에 오면 머쓱해져 딴 이야기만 잔뜩 하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 그 환자가 다시 찾아오면 은근슬쩍 '요즘 밤에는 어떠냐'고 물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측이 옳았다.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밤일 안 한 지 벌써 5년이나 됐다"며 하소연을 하더란다. 의사 선생님은 이 환자에게 비아그라를 처방해 줬고 나중에 큰 절까지 받으셨다면서 웃으셨다.

어려운 의학용어와 씨름하고, 누가 툭 치기만 해도 약물 정보를 술술 읊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든 게 있다. 고객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하고 그들을 설득해 내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모든 영업이 그렇듯 결국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환자가 털어놓지 않는 것까지 알아내 끄집어내 치료해 주는 의사를 진정한 명의라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 고객이 그런 명의가 되도록 돕는 것이니 어찌 보면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아그라 영업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내 최종 목표는 제약 마케팅의 전설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건 내 손을 거치면 블록버스터(보통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제품)로 탈바꿈하는 제약계의 '미다스'같은 존재 말이다. 지금은 조금 고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의사들과 부딪히고 환자들을 만나는 경험들이 분명 나의 이 꿈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란 믿음으로 오늘도 비뇨기과로 향한다. 비아그라는 나의 힘이다.

최보윤(28) 한국화이자제약 비아그라 영업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