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소득 과세할 때 물가 상승률 감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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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의 금리 인하와 사채 양성화 조치가 갑작스럽다는 뜻에서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많아도 그 타당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잘만 된다면 좋겠지만 꼭 잘 될 것인지를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절박했던 경제 사정을 돌이켜 본다면 이번 조치가 잘되지 않아서는 안되겠고 잘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지혜를 모아서 시행 과정에 허술한 점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처럼 비생산적이던 재산을 생산 자금으로 돌리기 위한 비상 조치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1950년에는 농지 개혁을 해서 지주들이 교부 받은 지가증권을 가지고 패망 일본이 버리고 간 기업을 인수하도록 했다.
6·25 동란만 아니었더라면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1962년에는 통화 개혁을 통해서 시중자금을 예금으로 동결하려 했는데 현금재산의 규모가 예상외로 적어서 곧 풀어주고 말았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차관을 덜 쓰는 경제개발이 되었을 것이다.
1972년에는 사채를 동결했다. 당시는 은행이 유일한 금융기관이어서 기업은 으레 개인 돈을 얻어 썼는데 이 채무를 동결한 것이다. 기업주 자신의 것은 출자로 전환시켰다. 이때 단자회사·투자공사를 만들고 주식공개와 회사채 발행을 촉진해서 일단 시중자금을 제도금융으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때에 자금이 합법적인 금융기관을 이용하도륵 유도하기 위해서 취했던 파격적인 유인책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결과 80년대에 들어 서면서는 경제·사회적인 모순이 두드러지게 된 것 같다.
4년에 걸친 장기 불황, 예상외의 물가 안정으로 기업 수익·근로 소득·부동산 소득은 격감하는데 오직 돈놀이하는 이자 소득만 높은 실질 소득을 올려 원금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소득은 모두 소유자를 밝혀서 종합과세 하는데 돈놀이만 가명이 허용되어서 마음대로 뒷돈을 받기도 하고 세금은 10여%의 비례세만 내면 되었다.

<물가고 원금 줄어>
그간 사업가나 근로소득자는 최고 70∼80%의 세금을 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금융 저축이 누려온 이례적인 특전을 없애려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특전을 빼앗기는 사람은 50년대의 지주처럼 극소수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은 환영은 할지언정 불평할 거리는 못된다고 여겨진다.
주식투자자의 경우 지난해 말로 7천만원 이상을 가진 사람은 4천 5백 명, 7백만원 이상 소유자도 5만 3천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한사람 당 자금 출처를 묻지 않기로 한 3천만원 한도도 너무 후하다는 평이 나옴직하다. 또 돈이 많은 소수인들도 은행·단자회사·자기 계열회사에 증자하거나 5%의 과징금만 물면 자금 출처를 묻지 않겠다고 하니 이번 조치가 결코 첫 느낌처럼 혁명적인 것도 아니다. 기껏 이자놀이 하던 것을 출자로 바꾸거나 세금을 좀더 내라는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한편 금융소득에 세금을 물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이자의 대부분은 물가 상승을 보전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을 모두 실질적인 과실소득으로 보고 높은 세율을 매기면 원금이 줄어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이자는 어쩌다가 물가보다 높을 적도 있지만 오래 지내고 보면 물가조차 제대로 따라 잡지 못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 양도차액에 과세할 때처럼 이자소득에도 물가 상승률을 뺀 후에 과세하던지 아니면 미국·일본처럼 종합과세 할 때 일정률(예컨대 30%)이 넘는 것은 이 최고세율을 일률로 적용해 주는 것이 좋아 보인다.

<투자 손실 소득 공제>
다음,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는 번잡하기만 할 뿐 실익이 없으므로 겉보기에 형평을 잃는 느낌만 아니라면 채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가는 지난 4년간에 2할 이상 떨어 졌으므로 그간 시세차 손익이 종합과세에 들어 있었더라면 세수를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적지 않은 세수 감소가 있었을 것이다.
투자자가 순 손실을 보면 다소나마 다른 과세소득에서 공제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다.
한편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적은 퇴직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노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합과세가 무차별 비례과세보다 합리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고 정년 퇴직자의 재취업 알선 등의 사회보장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조치가 나온 후에 재산 운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우선 돈이 많은 사람은 정부에서 허용하는 증자에 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조치가 기업을 살리자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자금 출처를 묻지 않고 그후의 소득세 부과도 마찬가지로 해준다면 주식투자가 돈놀이보다 못할 것이 없다.
한편 대다수의 가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근로소득세가 낮아지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근로자재산형성저축 면세국채 등으로 저축을 늘릴 기회라고 여겨진다.
이번 조치만으로 경기가 곧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극도의 어려움에 빠진 기업에 금리 부담과 세 부담을 줄여 주고 증자를 촉진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보는 셈이다.
이번의 저금리 저세율 질서의 성패가 걸린 물가 안정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정부·기업·가계가 모두 절약해서 저축하는데 힙을 모아야 할 것으로 어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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