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YMCA 60년(10)|여성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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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YWCA의 중요사업은 농촌사업.물산장려,사지풍조 퇴치운동,금주운동이 었으며 그외에 특히 지방YWCA 사업으로 실시한 것들 중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이 공민학교 및 기술훈련이다. 지방마다 약간씩 형태는 다르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뜻한 근로여성을 위한 공민학교 또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가 많아졌다.
서울 YWCA가 창설후 10여년 되던 36년, 공민학교를 시작하여 국민학교 교육의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10대,20대 여성들에게 국민학교 정도의 교육과정을 가르쳤다.
불우한 그들에게 산수·국어·간단한 과학등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대개가 남의 집에 사는 처녀들이었다.
그 밖에 교육 프로그램으로 30년대에는 주부들을 위한 여려가지 강습반이 활발 했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36년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던 중국요리강습 이었다.35년부터-그때는 서대문회관에 이사하여 1년반 쯤 되던 때-필자는 회관에 자주 드나들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론』이라는 아주 작은 잡지편집을 책임 맡아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한국YWCA회관을 빌어서 썼다.
그때는 연합회와 서울YWCA가 함께 사무실을 사용했다. 연합회 총무는 유각경씨가 했고 서울YWCA간사는 박봉자씨가 일했다. 박씨는 시인 박용철씨의 동생이 되며 평론가 김환태씨의 부인이다. 34년 이대 문과를 졸업하고 학생때 학생YWCA 간부로 있었던 관계로 YWCA를 잘 알았고 졸업하자 간사로 취임했다. 그는 클럽활동·강습반등 많은 일을 했다.
앞에서 이미. 지적 했듯이 강습반 중에는 중국요리강습이 그 어느 강습보다도 이색적이며 인기가 있었다. 당시에도 중국요리들을 좋아 했지만 대개 중국집 요리사들이 무서운 사람들이고 강습을 시킬 수 없는 과목이 었는데 그때 마침 좋은 강사를 초빙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강습을 개설할 수 있었다. 강사는 중국본토에서 오래 있다가 귀국한 정순원씨 였다.
정씨는 중국에서 요리실무를 경험 했다기보다 흥미를 가지고 연구했고 여기 중국집 정도에서는 전혀 구경할 수 없는 진기한 음식을 1주일 계속해 강의했다.
정씨는 독립투사 유가족으로 남편을 잃고 귀국해 YWCA에는 황신덕씨의 소개로 인연을 갖게 되었다. 정씨는 중앙여고 가사교사로 오래 봉직하다가 정년퇴직해 아직 서대문에 살고 있다.
그밖에 조화강습이 이화여고에 늦도록 봉직하던 장선희씨에 의해 강의했고 현 양명여대학장 배재명씨가 지도한 인형강습반, 선교사들의 서양요리강습,양재,편물등 강습반도 있었다.
이런 강습반들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계속해 오고 있다.
또 연합회와 서울YWCA가 연합 프로그램으로 한짓이 있었다.
음력정월에 시조 경연대회를 주최한 일이다. 의윈간의 친목을 위해 윷놀이도 했다. 이 두가지는 우리 고유의 것을 찾자는데 목적이 있기도 했다. 시조놀이는 그시각이 36년1월이었던 것 같다. 그후 약 5년간 계속했다. 많은 청소년들이 왔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던 매 1백편의 시조를 암송 해야하는 시조놀이는 크나큰 뜻이 있었던 것 같다.윷놀이도 역시 우리 고유의 놀이를 여성들이 계승해야 한다는데 축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인 기술 습득이나 한국고유의 것을 이어 나가는데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과 더불어 영적인 면에 있어서 신앙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다.
얼마든지 우리생활에 필요한 것, 우리네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히 여성들이 간여된 의식주에 관한 일들을 습득하고 배우는 한편 종교적인 양식 보급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끔 YMCA와 함께 정기적으로 예배를 보았고 세계 YWCA 기도주간은 그 시절이 더 활발 했었다.
기도주간 1주일동안 주어진 그때도 지금 같이 1주일 동안의 성경구절과 제목이 세계YWCA 본부로부터 보내져 왔다. 제목에 따라 예배를 했다.
크리스머스 축하 예배는 YMCA와 공동으로 행한 때가 많았다. YMCA는 강당이 있었고 YWCA는 회관이 한옥으로 안방·건넌방·마루·아랫방등을 각각사무실로 사용하는데는 별 불편이 없었으나 강당용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다.
거기다가 져넉엔 공민학교를 대청마루-대청이라야 4평정도의 것이 었지만-에서 했으니까 좀 큰 행사라 든지 강연회같은 것은 대개 YMCA 강당을 빌어서 했으니 크리스머스 축하예배같은 것은 공동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 웠다고 하겠다.
서대문힉관을 장만하기까지는 태화사회관(감리교사회관-2,3년전 까지도 결혼식장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빌딩을 짓고 있는), YMCA등에서 곁방살이를 하다가 불편한대로 서대문(지금의 대한교육회관과 새문안교회 중간 좁은 골목 뒤에)회관을 마련했는데 해방될 때까지 많은 활동을 활발히 했던, 정이 가고 추억이 많은 회관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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