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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핑크 팰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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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말의 대학로는 인생의 빛나는 한때를 즐기는 젊은이로 가득하다. 그들 중 다수는 복중의 더위 따윈 아랑곳없이 서로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은 연인이고, 젊음의 거리답게 짐짓 과감한 스킨십을 나눈대도 누구도 따가운 눈총을 건네지 않는다. '할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었던' 성에 대한 유교문화의 오랜 불문율을 깨고, 한국 사회도 표면적으로는 욕망에 대해 개방의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섹시하다'는 말은 모욕이 아니라 찬사가 되었고, '성 상품화'의 문제 제기를 훌쩍 뛰어넘어 성적 코드 없이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성 풍속도를 음란하고 방종하다 개탄하는 일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고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음란하다. 음란하고도 잔인하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다룬, 그러나 야하기보다는 가슴 아픈 영화였다. 영화의 제목은 '핑크 팰리스'. 장애인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다. 실제로 호주 멜버른에 자리한 그 분홍빛 궁전은 장애인 손님을 위해 넓은 현관문과 경사로, 좌식 샤워기 등의 시설을 갖추고 국가가 직접 성매매를 주선한다고 한다.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되고 공창이니 성 노동자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하필이면 미묘하고 껄끄러운 성매매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영화 '핑크 팰리스'의 이야기는 민감함을 뛰어넘어 절박하다. 그들이 자신의 성을 이야기한다. 척수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경직이 심해 자위행위조차 원활히 할 수 없는 뇌성마비장애인…. 지금껏 스스로 '정상인'으로 여겨 온 비장애인에게는 기껏해야 봉사와 연민을 바치기에 족한 무성의 존재들이 자신의 욕구와 경험에 대해 진실을 고백한다.

장애가 심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48세의 중증뇌성마비장애인 최동수씨는 평생 소원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모은 용돈을 소중히 싸 들고 이른바 '집창촌'을 찾아간다. "한번 태어났다 죽으면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르는데,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라고 부르짖는 그의 자작시는 사랑과 소통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다. 그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불편하지만 분명한 육체로 존재하는 그들을.

한국 사회가 음란한 것은 성적 문란과 방종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그리고 위선과 모순 때문이다. 보호와 성교육의 대상인 청소년들은 원조교제에 시달리고, 주책 부리지 말고 점잖게 늙어야 한다는 노인들은 들병이의 표적이 되고, 무성의 존재로 치부되는 장애인들은 성폭력과 유기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장애가 없는 젊은 이성애자가 아니고서야 소외와 편견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그러하기에 누구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관리할 권리와 의무가 있기에, 더욱 공적으로 안전하게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진실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하다.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정상적인' 성적 욕망이 있다. 기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허위에 익숙하거나 안일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들 역시 영혼과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의정 단상에 선 국회의원은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욱 편할 것이다'고 했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비장애인은 더욱 행복할 것이다.

김별아 소설가

◆약력=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축구전쟁' 등 작품.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